금융가

황당한 대출규제...이혼소송 자료까지 요구하는 은행

대출취급 더 까다로워지면서

자금사용 증빙 위해 자료요구

병원치료비·위자료 액수 등

민감정보까지 제출해야 심사

"은행이 '민사 대출법원' 됐다"



최근 생활안정자금용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서 상담을 받던 40대 직장인 A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요구사항을 들었다. A씨는 주택을 보유한 차주이기 때문에 1억원 이상의 생활안정자금용 주담대를 신청하려면 공인된 서류를 통해 자금 목적을 증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혼 과정에서 부담하게 된 위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신청했던 A씨는 위자료 액수가 적혀 있는 이혼 소송 판결문을 제출해야만 대출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고 결국 사생활 침해 위험을 감수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규제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했던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에는 이혼 소송 판결문부터 가족 간의 재산분쟁 관련 합의문, 병원 진단서와 치료비 청구 내역까지 고객들의 민감한 사생활이 담긴 증빙 자료들이 쌓이고 있다. ‘9·13대책’ 시행으로 생활안정자금 주담대 취급 조건이 한층 까다로워지면서 1주택자가 1억원 초과의 대출을 받으려면 자금 사용 목적이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증빙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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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대출을 받기 위한 절차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가 의결한 은행업감독규정 등에 따르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의 1주택 세대에 대해 원칙적으로 주택 신규 구입을 위한 주담대를 제한하되 실수요·불가피성 등을 감안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했다. 규정에 명시된 예외 사항은 이사, 부모 봉양, 치료, 요양, 근무상 형편 등으로 이 역시 문서를 통해 사실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제도 시행 당시 금융당국은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1주택자의 예외 사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은행이 판단하고 근거만 유지하면 된다”고 했지만 시중은행들로서는 사후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해 증빙자료 제출을 까다롭게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자금 조달이 시급한 차주로서는 민감한 정보가 담긴 증빙자료 제출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사업자 대출도 대출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사후 점검 기준이 강화되면서 사용 목적 증빙 절차가 더욱 복잡해졌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주택구입자금 등 다른 용도로 쓰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대출 유용에 대한 감독이 강화되면서 차주들은 사업장 설비 구입 계약서부터 인테리어 시공비 등 각종 계약서를 은행에 제출하고 있다.

고객들로서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고 은행들도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각종 증빙 서류가 쌓이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의 대출금 사용 목적부터 각각의 사연까지 대출별로 케이스가 워낙 다양해 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출 한도와 이자를 판결해주는 민사 대출법원이 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며 “대출 집행과 관리가 투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시점에 고객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서은영 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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