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동향

"시장 뚫는데 20년 걸렸는데…日 거래처서 무기한 연기 통보"

[日 경제보복 피해 우려 커지는 기업들]

■방진스프링 등 제작 윤은중 엔에스브이 대표의 탄식

윤은중 엔에스브이 대표가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사무소에서 일본의 수출 제한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심우일기자


“이번 한일 통상 분쟁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의 냉각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과의 거래관계가 아예 끊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윤은중(64) 엔에스브이 대표는 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깊은 우려를 전했다. 엔에스브이는 건물이나 공장에 들어가는 방진스프링이나 방진패드·소음기 등을 제작하는 강소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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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에스브이는 지난해 일본 업체와 폴리우레탄 매트(PO-MAT) 판매특약점 계약을 맺었다. 지난 20년 동안 기술개발에 매진하며 일본 시장을 두드린 값진 성과였다. 이번 계약을 토대로 일본 현지 건설사에 폴리우레탄 매트를 납품하기 위한 영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구라시키 가코라는 일본 방진·제진재 관련 강소기업과 기술교류 협약을 맺기도 했다. 구라시키 가코에서 제공한 도면을 토대로 방진재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이 방진재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납품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에 나서자 엔에스브이에도 불똥이 튀었다. 엔에스브이와 거래하고 있는 일본 업체들의 태도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다. 양석근 엔에스브이 해외사업부 본부장은 “일본 정부에서 수출규제안을 발표한 후 폴리우레탄 매트를 두고 협상을 벌이던 일본 거래처로부터 ‘시간을 두고 기다려보자’는 회신이 왔다”며 “사실상 ‘무기한 연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방진매트 수출 계약 코앞 뒀는데

협상중 ‘잠시 기다려보자’ 회신

日 규제 후 현지 태도 확 달라져

오랜시간 공들인 사업에 큰 차질

정치논리에 피해 커질까 애간장

◇“일본 시장 뚫는 데 20년 걸려”=엔에스브이는 지난 1986년 윤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설립 이후 방진·제진재 등을 꾸준히 개발해왔으며 국내 업체 중 방진패드 분야 생산량 1위 업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일본 업체들의 문을 두드린 건 2000년부터다. 방진·제진재 업계에서 일본이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일본은 지진이 많이 발생해 내진 설계 수요가 많다. 건물 흔들림을 방지하는 방진·제진재를 찾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방진·제진재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 업체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는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일본 업체들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거듭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대표는 ‘엔에스브이’의 이름을 걸고 일본 판로를 뚫고 싶었다. 윤 대표는 “일본 기업은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국산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OEM으로 만들자고 제안한 곳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시장 진출이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브랜드로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윤 대표의 고집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일본 차량용 방진고무 업체인 구라시키 가코와 기술협약을 맺은 것이다. 구라시키 가코로부터 제진재 도면을 받으면, 엔에스브이가 이를 토대로 제품을 만드는 식이다. 이와 함께 윤 대표는 구라시키 가코의 공장을 견학한 것을 토대로 지난해 남동공단에 있는 생산설비를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한 업체와 판매특약 계약도 맺었다. 윤 대표는 “판매특약을 체결한 업체와는 2000년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며 “현재 그 회사의 대표는 2000년 당시 대표의 아들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슬로 템포’로 들어선 일본 기업들=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엔에스브이는 일본 시장에 폴리우레탄 매트를 판매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폴리우레탄 매트는 오스트리아의 ‘게츠너(Getzner)’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엔에스브이가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업체들로부터 피드백이 더뎌지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윤 대표는 “거래하던 일본 기업들이 확연히 ‘느린 템포’로 돌아섰다”며 “일본 건설사들이 ‘좀 더 시간을 두고 보자’며 뜸을 들이는 상황인데, 표면적으로는 한일관계가 안정될 때까지 참자는 말이지만 사실상 납품 계약이나 발주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이 ‘긴밀한 파트너’라고 거듭 강조했다. 양국 기업 사이에는 파트너십이 형성될 수밖에 없어 이 같은 통상 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으면 자연히 양측에 악영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조치로 피해를 보는 건 일본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라며 “이 때문에 (일본 기업인 사이에서는) 이번 통상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도 조심스럽게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정치권이 각자의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경제 문제만큼은 실리 위주로 따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표는 “결국 일본 정부도 표를 의식해서 이런 일을 한 것 아니겠느냐”며 “기업인이 정치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정치 논리와 상관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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