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자치경찰, 치안시스템의 대전환] 근무시간 절반 순찰·가구방문..나가노현 중요범죄 60% 줄여

<2>지역사회와 초밀착한 일본

日, 절충·통합형 모델 구축

사건 대응보다 예방에 초점

순찰차 대신 도보·자전거로

담당구역 골목 구석까지 훑고

지역사회와 정보 공유도 활발

일본 나가노현 나가노시 중앙경찰서 소속 곤도코방의 한 경찰이 지난 5월29일 코방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나가노=서종갑기자


지난 5월29일 오전 9시 나가노현 나가노시 중앙경찰서 소속 곤도코방(ごんどう交番·파출소). 후지하라 다이조(가명) 순사부장(경사급)은 출근하자마자 방문할 가구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지하라 부장의 당일 업무는 최근 늘어난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 팸플릿을 집집 마다 나눠주는 것이다. 특히 보이스피싱 범죄에 취약한 노년층이 주대상이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장수촌인 나가노시는 노인인구가 많다. 20여 분 뒤 한 노인 가구를 방문한 후지하라 부장은 주민으로부터 최근 집 인근에서 비행청소년 무리가 자주 눈에 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그는 “가구 방문으로 동네 치안 현황을 파악해 다음 순찰 계획에 반영한다”고 말했다.



후지하라 부장은 자치경찰이다. 일본은 1947년 경찰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이원 체계를 출범시켰다. 외형적으로는 이원적 구조지만 경찰청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 통일조직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제주특별자치도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서 중앙집권형인 프랑스 사례를 벤치마킹했지만 확대 시행을 앞두고는 사무범위나 합의제행정기관으로서의 시도경찰위원회 기능 등으로 인해 절충·통합형인 일본 모델과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치경찰에게 일부 수사권이 부여되는 것도 일본과 유사하다.

나가노시 자치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할 때 배부하는 ‘지진 대비 행동요령’ 한국어 팸플릿. 일본 자치경찰은 지역 내 외국인을 위한 외국어 팸플릿도 구비하고 있다./나가노=서종갑기자


◇지역사회와 ‘초밀착’…예방활동 통해 범죄율 낮춰=일본 자치경찰은 말 그대로 지역 주민과 ‘착’ 달라붙어 있다. 치안의 핵심을 사건 발생 후 대응이 아닌 ‘예방’에 두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112 신고 사건 처리에 허덕이는 한국 경찰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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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방 소속 경찰들의 하루 일과 역시 순찰 활동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곤도코방의 경우 6시간 휴식 시간을 제외한 하루 18시간 근무 중 최소 10시간을 순찰에 쏟는다. 순찰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눠 이뤄진다. 먼저 우범지역 순찰이다. 곤도코방에서는 청소년범죄에 힘을 쏟고 있다. 주된 활동은 시가지인 나가노역 및 곤도역 인근 비행청소년의 절도와 음주·흡연을 단속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주민도 밀접히 참여한다. ‘방범협회’라는 주민 자치단체가 집중 단속 장소 등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자체 순찰 활동에도 나선다. 곤도코방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경찰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범죄 예방에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이 때문에 지역 주민의 치안 참여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5시간은 가구방문이다. 하루 기준으로 경찰 한 명당 20가구, 1개팀이 80가구 정도를 방문한다. 노인·여성 등 범죄 취약계층과 우범인물 등이 주 대상이다. 코방 대원은 보이스피싱 등 최근 기승을 부리는 범죄 예방법이나 지진 등 재난 시 행동요령이 담긴 유인물을 방문 가구에 전달한다. 동시에 주민들의 치안 수요나 동향 등 정보도 같이 수집한다. 이는 나가노현 보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쿄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자치경찰은 집중 순찰 지역 선정 등 치안 계획을 세운다. 말 뿐인 예방이 아닌 사건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치안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나가노현 경찰본부 소속 자치경찰들이 지역 사회 순찰 중 한 시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나가노현 경찰본부


◇느리지만 확실한 효과…중요범죄 발생건수 17년만에 절반으로 감소=나가노현 자치경찰의 치안 활동은 실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나가노현 경찰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 강도, 방화, 강간, 유괴, 인신매매, 성추행 등 중요범죄 발생 건수는 101건이다. 이는 나가노현에서 역대 가장 범죄가 많이 발생했던 2001년 254건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수치다.

비결은 ‘초밀착 치안활동’이다. 가구 방문 등으로 종합한 정보에 기반해 사고 발생 예상 지역에 경찰을 집중 배치하는 것이다. ‘원론적인 대응책 아니냐’는 질문에 경찰본부 관계자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이 관계자는 “제복 차림의 경찰이 순찰에 나서면 주민들에게 자각 효과를 준다”며 “대단한 대책은 아니지만 기본 순찰이 이처럼 계속 쌓여가며 범죄율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숨은 공신도 있다. 바로 지역사회다. 나가노현 경찰본부는 지난 2001년 이후 민간 부문과 협력을 강화해 치안 수준을 대폭 개선했다. 순찰의 경우 방범협회 등과 협력해 횟수를 늘렸다. 경찰본부 관계자는 “일반 기업체와도 협력시스템을 구축해 범죄 예방에 힘쓴다”며 “절도사건 감소를 위해 열쇠·도어락 제조업체와 정보를 공유하는 게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자치경찰의 순찰 강화와 지역사회와의 협력은 지난 5월28일 발생한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에서도 돋보였다. 가와사키시에서 50대 남성이 등교 차량을 기다리던 초등학생 등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학생들이 밀집한 지역에 순찰 병력을 집중시켜 추가 범죄를 차단했다. 또 가와사키시 학부모 단체는 지역별로 8~9명씩 조를 짜 초등학생 등하교에 동행했다.

곤도코방을 방문했을 때 특이한 점은 경찰들이 웬만해서는 순찰차를 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코방 인근에서도 순찰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신이 맡은 지역의 큰 도로는 물론 골목 구석구석까지 자세히 알기 위해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고 경찰본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역 현안을 꿰뚫기 위해 그 정도 고생은 마다않는 것이다. 곤도코방 관계자는 “자치경찰제의 성패는 지역사회와의 밀착 정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나가노=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나가노현 경찰본부 소속 자치경찰이 지역사회 행사 도중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나가노현 경찰본부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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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김언수 장편소설 '뜨거운 피' 여주인공 인숙의 말입니다. 남 탓, 조건 탓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부끄러운 기자가 되지 않으려 오늘도 저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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