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금융정책

정부 "극히 예외적인 때만 전세대출 허용"

다음달 중순께 예외규정 발표

"갭투자 막다 서민만 잡을 판"




정부가 12·16부동산대책에서 불가피한 전세수요는 대출이 가능하게 예외규정을 두겠다고 했지만 사례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이를 다 고려하면 갭투자 우회경로가 될 수 있으므로 초강력 12·16대책의 정신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갭투자 차단도 중요하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내년 1월 중순께 전세대출 금지·회수 예외규정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거리에 나앉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책의 전세 부문은 △9억원을 초과하는 집을 가진 사람의 전세대출 전면 금지와 △전세대출을 받아 전셋집에 사는 사람이 9억원을 초과하는 집을 사거나 2주택 이상 보유할 경우 전세대출 회수 등 ‘금지와 회수’ 크게 두 가지다.

구체적으로 지난 10·1대책으로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9억원을 초과하는 집을 가진 사람의 전세대출 보증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번에 사적보증인 서울보증보험도 포함됐다. 교육·부모봉양·직장·통원치료 등 예외사유가 있지만 이 경우 자가 집과 전셋집 모두에 가족이 살아야 한다. 서울보증보험도 1월 중순부터 보증을 서지 않을 방침인데 이 같은 예외사유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전세대출 회수는 교육·부모봉양 등 금지의 예외규정을 준용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볼 것”이라며 “누가 봐도 실수요인 것만 인정하는 등 최대한 한정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질의 교육기회 빼앗아…집 팔아 강남 전세난민 되란 소리냐” 분통

■‘뜨거운 감자’ 된 전세대출 금지·회수

“집 장만하려 전세 끼고 매수했는데 갭투자 제재받아”

‘선의의 피해’ 호소 잇따라…실수요자 권리 침해 지적

“집값은 정부가 올려놓고 대출 번거로움만 키워” 불만도



정부가 전세대출 금지·회수의 예외조항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용인하겠다고 밝히면서 전세자금대출이 12·16 부동산대책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남 4구에서 매매된 집 10채 중 6채 이상이 보증금을 승계한 ‘갭투자’인 만큼 전세자금 대출을 이용한 갭투자를 전면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의의 실수요자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커지며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길음동에 시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보유하고 실제 거주하고 있는 40대 김모씨가 대표적인 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날이 머지않으면서 강남이나 잠실·목동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12·16대책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시가 9억원 초과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은 전세자금대출이 공적보증은 물론 이번에 사적보증까지 모두 불가능하게 막아 사실상 전세자금대출 받을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1월 중순 발표될 전세대출 금지·회수 예외 규정에 김씨와 같은 사례는 들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김씨는 결과적으로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의 전세 수요를 늘려 전세가격을 올리고 이에 따라 갭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다. 좋은 학군으로 가고자 하는 선의의 목적이 있지만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 갭투자는 크게 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신규 주택 매매 거래 중 63.5%가 전세 등 보증금을 승계한 것이다. 비중은 지난 7월 57.8%에서 계속 오르고 있다. 강남4구에서 지난달 매매 거래된 집 100채 중 63채가 갭투자라는 뜻이다. 서울 전역을 봐도 같은 기간 49.8%에서 56.1%로 급증했다.

반면 김씨는 억울하다. 그는 “교육정책 개편으로 결국 전통적으로 학군이 좋은 곳이 더 각광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전세로라도 이사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강남·목동 진입을 하지 말라는 ‘사다리 걷어차기’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며 “일반 국민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결국 집을 팔면 전세로 강남에 갈 수야 있겠지만 그것은 이번 정부가 말하는 ‘내 집 한 채 마련 소망 이루기’와는 정반대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올 10월 시가 9억원대 서울 소재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산 30대 후반 주부 유모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쌍둥이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아파트에 살 목적으로 전세를 끼고 샀다. 지금은 쌍둥이 자녀 보육 문제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친정 부모님 집 근처에 전세를 살려고 했지만 이 같은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유씨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시점에 9억원 초과 집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전세자금대출이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정부 입장에서 유씨는 본인은 전세로 살며 갭투자를 한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이다. 나름대로 사정은 있지만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전세를 끼고 산 것으로 집 매수세에 일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씨 역시 답답하다. 최근 집값이 자고 일어나면 올라 본인은 지금 전세를 끼고라도 서울 아파트를 사놓지 않으면 평생 서울에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결정한 매수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갭투자로 보고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별개로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는 예외로 인정받으려면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해 불만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가 현재 전세대출 공적보증을 받기 위해서는 교육·부모봉양·직장·통원치료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사적보증도 보증도 비슷한 예외규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예외규정 악용을 철저하게 막기 위한 것이지만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 잘못으로 집값을 올려놓고 이를 잡겠다며 국민의 번거로움만 키웠다’는 불만이 커질 수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회수 예외로 인정할 수 있는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으며 내년 1월 중 가능한 것만 나열하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예외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태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