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나이는 건강한 나이(healthy age)와 건강하지 못한 나이로 구분된다. 건강하지 못한 나이를 사는 준비를 해야 한다.
우재룡 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우리 국민들은 노후준비에 매우 취약하다. 가족중심의 노후생활에서 자녀와 떨어져 부부가 함께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부부중심의 노후준비라는 생각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워낙 노후준비를 강조하는지라 노후생활비나 의료비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은 퍼져가는 듯하다. 지난해 연금가입률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취약한 점이 있다. 바로 노후생활 후반기에 건강이 안 좋을 때의 대책이다.
사람의 나이는 건강한 나이(healthy age)와 건강하지 못한 나이로 구분될 수 있다. 건강하지 못한 나이란 질병이나 노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거나 다른 사람의 간호를 받는 기간을 말한다.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1세로 10세 정도 차이가 난다. 즉 우리 국민들의 전체 수명 중 약 10%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은퇴 후 노후의 삶은 5단계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활동기(60~70대), 회고기(70대 후반~80대 초반), 남편간병기, 부인홀로생존기, 부인간병기라는 5단계를 거치게 된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은퇴 후 삶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남편의 간병기와 부인의 간병기가 잘 준비돼야 행복한 은퇴생활이 완성된다.
2011년 WHO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1세로 10세 정도 차이가 난다. 즉 우리 국민들의 전체 수명 중 약 10%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1 체계적인 노후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 중 35.9%만이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과 노인은 일주일에 150분 이상, 유산소 활동과 근력·뼈 강화를 위한 신체활동을 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은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은퇴생활을 시작하는 50대 남자의 경우 37.8%, 60대 남자의 38.0%만이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의 운동 실천율은 남성들보다 약 5% 정도 더 높다. 결국 50대, 60대 국민 중 60~70%가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건강관리를 소홀하게 할 경우 건강을 놓쳐 노후의료비가 더 소요될 것이며, 삶의 만족도가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간병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암, 당뇨, 고혈압과 같은 심각한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비가 추가로 소요되며, 치매나 거동이 불편해지는 경우 간호비용이 들어간다. 자신이 선택하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게는 2,000만~3,000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 만약 거동이 불편해질 경우 어디서, 누구에게 간병을 받을 계획인지를 미리 생각해 봐야 한다. 자녀가 치매에 걸린 부모를 부양할 경우 온 가족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게 된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간병지옥'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한국의 노인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결과, 노인자살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3 부인의 간병기를 좀 더 잘 대비해야 한다. 남성의 84%는 부인에게 간병을 받는다. 그래서 남성들은 내 집에서 부인에게 간병을 받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편 사별 후 평균 10여 년을 더 생존하는 부인의 간병대책이 중요해진다. 부인 홀로 맞이하는 생존기 동안 생활비와 의료비, 주거, 가족과의 관계 등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남편 없이 혼자서 맞이하는 의료비와 요양경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사망하면서 남기는 재산과 사망보험금은 가장 먼저 부인이 충분하게 사용해야 한다. 남편 사망 시 모든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 주게 되면 부인에게 불행한 말년을 가져다 주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노후준비를 부부가 같이하면서 부인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고들 한다.
4 남의 도움없이 간병기를 내 집에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세워야 한다. 은퇴 직후 활동기에는 자신이 선호하는 거주생활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간병기가 열리게 되면 현재 주거하는 집을 수리하거나 이사해야 한다. 은퇴자들이 계단이나 욕실에서 쓰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집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기법으로 수리해야 한다. 휠체어가 마음대로 지나다닐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계단을 경사로로 만들고, 부엌과 화장실을 개조해야 한다. 원래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장애인이나 노인과 같이 노약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디자인 하는 것을 말한다. 남의 도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변기, 휠체어를 타고 식사 준비가 가능하게 설계된 높낮이 조절 싱크대 등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결과물이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안전한 주택에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정책적으로 보조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스웨덴, 영국 노인중 거의 80~90%가 다소 몸이 불편해도 자신의 집에서 정든 이웃과 편의시설을 곁에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간병기를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는 주택개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5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활용방법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 은퇴자들은 대부분 요양시설을 꺼려한다. 하지만 가족의 간병이 어렵거나 혼자서 노후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요양시설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합리적인 이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요양시설 중 상당수가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저렴한 비용으로 수용한다는 식의 낙후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가정처럼 편안한 시설을 마련하고 정성 들여 돌봐주는 요양서비스가 점차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요양시설에 가서 자원봉사를 해보거나 미리 자신이 지낼 곳을 선택해서 예약을 해 놓는 것도 바람직하다. 문제는 입주 보증금과 매월 지출되는 요양경비인데, 주로 연금상품에서 규칙적으로 지급되도록 해 놔야 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판단력이 떨어지므로 매월 은행에서 찾아서 지급한다는 식의 비용계획은 불가능하다.
은퇴설계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간병대책은 참으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활동기에 사용하는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그치는데, 그 다음 단계인 간병기의 비용과 거주방법, 간병을 받는 방법 등을 가족과 충분하게 미리 상의해서 결정해야 행복한 은퇴생활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간병서비스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자녀들의 앞에서 사망한다는 보장이 있으면 간병대책은 불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건강할지라도 비 올 때를 대비해서 간병대책을 세워볼 필요가 있다.
우재룡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펀드평가 대표이사, 동양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거쳤으며, 현재 은퇴전문가로 활발한 저술·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