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햇반’의 경쟁상대는 ‘쿠쿠’

Market Leader

‘햇반’은 연간 1,500억 원대 즉석밥 시장에서 절대강자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햇반이 즉석밥 시장에서 경쟁제품을 따돌리고 점유율 70%대를 유지하고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쿠쿠를 이기자!” CJ제일제당 햇반팀의 파이팅 구호다. 올해로 16년째 즉석밥 시장 1위를 수성 중인 햇반은 동류 제품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밥솥 브랜드를 경쟁 상대로 지목한 것은 집에서 직접 지은 밥과 경쟁하겠다는 뜻이다.

일견 엉뚱해 보이는 구호이지만, 햇반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과 그에 따른 자신감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지난해 즉석밥 시장 전체 매출액은 1,430억 원이었다. 이 중에서 CJ제일제당의 햇반류가 1,008억 원을 차지해 7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2위인 오뚜기 오뚜기밥류가 269억 원, 3위인 농심 햅쌀밥류가 7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높은 시장점유율과 브랜드 인지도로 인해 햇반을 국내 즉석밥의 ‘원조’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즉석밥의 최초 브랜드는 1993년 천일식품에서 내놓은 냉동볶음밥이다. 1995년엔 비락과 빙그레에서 레토르트 공법(내열성 플라스틱 필름 등에 식품을 넣어 밀봉 후 가압·가열·멸균 또는 살균하는 인스턴트식품 제조 방법)을 적용한 즉석밥을 내놓았다. 1996년 12월에야 첫 출시가 된 햇반은 늦깎이 후발주자다.

1990년대 우리나라 즉석밥 시장의 태동에는 우리와 비슷한 식문화를 가진 일본의 영향이 컸다. 일본은 이미 1980년에 즉석밥이 등장해 1990년대엔 연평균 14%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일본의 즉석밥 시장 성장에 자극을 받은 국내기업들이 즉석밥 개발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CJ제일제당은 1989년에 알파미(정백미로 밥을 지은 후 상압 또는 감압 상태에서 급속 탈수해 수분율 5% 이하로 건조한 쌀)로 즉석밥 시장 진출을 검토했다. 유통기간 동안 밥이 상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수분율을 극도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즉석밥은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었기에 편의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강점을 가졌으나 맛이 형편없었다. 결국 알파미를 사용한 즉석밥 제품은 시중에 나오지 못했다.

CJ제일제당은 이번에는 동결건조미를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동결건조미는 밥을 지어 동결한 다음 수분을 제거한 쌀로, 제품 복원력은 우수하지만 얼리는 과정에서 밥알의 조직구조가 손상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쉽게 부스러지는 밥알 탓에 동결건조미를 이용한 즉석밥 역시 출시되지 못했다.

두 차례 실패 후 CJ제일제당은 일본 즉석밥 제품의 무균포장 방식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무균포장이란 클린룸에서 살균 포장재를 이용해 밥을 포장하는 기술이다. 균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방부제 없이도 장기간 상온보관이 가능했고, 쌀의 수분율을 낮출 필요가 없어 맛이 떨어진다든가 밥알이 부스러질 염려도 없었다.

무균포장 방식이 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임이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됐지만 CJ제일제당은 이 방식의 적용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무균포장 공정설비가 막대한 투자비용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클린룸은 고부가가치를 지니는 반도체 공정 등에서나 사용되는 설비였다. ‘사먹는 밥’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고 성공 여부도 불투명한 신제품에 거액의 투자를 결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 설비투자비용만 100억 원이 필요했고, 설비를 이용한 제품 확장 가능성 또한 낮았다. ‘이미 즉석밥을 출시한 다른 경쟁업체들처럼 레토르트 공법을 이용한 제품을 출시하자’는 내부의견도 상당했다.

여러 차례의 갑론을박 끝에 결국은 무균포장 방식을 적용키로 결정했다. 쌀과 물 외에 일체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장기간 신선한 밥맛을 낼 수 있는 무균포장의 장점이 반대 의견을 누른 것이다. 국내 최초 무균화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즉석밥 ‘햇반’의 탄생 배경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은 즉석밥을 ‘바쁠 때 먹는 맛없고 질 나쁜 인스턴트 식품’ 정도로 인식했다. ‘햇반’이라는 이름은 ‘방금 만든 맛있는 밥’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선택된 이름이다. 차별화된 제품임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초기 햇반 전담 연구원들과 생산기술팀원들은 맛 좋고 질 좋은 쌀을 찾기 위해 전국의 미곡처리장 1만여 곳을 누비고 다녔다. 300여명으로 구성된 소비자 평가단의 소비자조사를 몇 차례나 반복해서 실시할 정도로 원재료에 대한 고민이 컸던 탓이다.

요즘도 햇반팀의 제일 큰 고민은 원재료인 ‘쌀’에 대한 것이다. 예전보다 월등히 늘어난 시장수요에 질 좋은 쌀 물량을 채우는 일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판매량이 적을 땐 특정 지역의 물량으로도 충분했지만 생산 볼륨이 커진 이후부턴 매년 전국의 미곡처리장을 찾아 다니며 그해의 가장 맛있는 쌀을 찾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산지별로 제각각인 쌀의 개별 특성을 조정해 맛을 표준화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출시 년도나 지역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밥맛을 한결같이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햇반도 여름철만 되면 식감이 일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CJ제일제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쌀의 보관에서부터 제품 출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세세히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여름철 도정미 운송과정에서의 온도변화가 냉장 저장 효과를 떨어뜨리는 문제 등을 발견했다.

CJ제일제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쌀이 외부 환경에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몇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그 결과 자체 도정 시설을 도입하고 당일도정시스템(쌀 도정 후 하루 내에 밥을 짓는 생산프로세스)을 구축하게 됐다. 현재는 처음 무균포장 기술을 벤치마킹한 일본 업체들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갖게 됐다. 일본에서 공정과정 공개 및 기술력 이전을 요청할 정도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식품업계 경쟁사들인 농심과 오뚜기, 동원 등이 즉석밥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면서 시장의 판을 흔들려 했으나, 햇반이 생산 공정의 혁신으로 제품의 품질에서 앞서나가자 결과적으로 이들 기업의 시장 진입은 별 위험요소가 되지 못했다. 최근 즉석밥 시장은 1,5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매년 20%대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악의 불경기로 꼽히는 2012년에도 24%나 성장했다. 경기가 불황임에도 주 소비자 층인 1인 가구 및 20~30대 가구, 노년 가구의 매출이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즉석밥이 일상식으로 소비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필수소비재로 즉석밥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인 가구와 노년가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시장 전망도 밝다.

CJ제일제당은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지난해 햇반 700만 개를 해외로 수출했지만 이도 만족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채민수 홍보팀 대리는 말한다. “워낙 내수시장 규모가 작습니다. 인구 1억이 안되죠. 당장은 성장세가 이어지겠지만 곧 포화상태가 될 겁니다. 그래서 햇반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슬람 시장을 위해 할랄인증도 받아 놓은 상태죠. 물론 지난해 700만 개 수출이 적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를 대상으로 보자면 극히 작은 수치죠. 쌀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햇반은 쌀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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