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부하직원에게 바로 화풀이를 하는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가서 푸는가? 그리고 매번 후회하는가? 그렇다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어렵다.
글·사진 차병선 기자 acha@hk.co.kr
도움말 민진희 자이요가 원장
“나를 화나게 만든 건 주변 환경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수입 대행 쇼핑몰 ‘버커니어(Buccaneer)’를 운영하는 고승윤(33) 대표. 그는 인터넷 오픈마켓에 입점해 있어 전화상담을 많이 받는다. 상품문의에서부터 고객불만에 이르기까지 통화 내용도 다양하다. 사업 초기에는 하루 24시간 내내 혼자서 200통화를 넘게 처리한 적도 있다.
“처음 오픈했을 땐 전화 한통 한통이 반가웠지만 갈수록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죠. 전화상담을 흔히 감정노동이라 하잖아요. 정말 기를 빨리는 느낌이었어요.” 사업을 하면서, 일관되지 못한 자신의 태도도 마음에 거슬렸다. “상대가 갑일 때는 부드러워지고, 을일 때는 거칠어져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변하더군요. 사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죠.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런 저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얼마 전부터는 직원이 늘어 고 대표가 직접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는 직원을 관리하거나 협력업체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돈 문제, 물건이 파손됐을 때 책임 여부 등 미세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고 대표는 화를 내고 상대방을 ‘찍어 누르곤’ 했다. 스스로도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로 상대방을 대했다”고 말했다. “내가 돈 주고 쓰는 사람들인데 그만큼 알아서 잘해주길 바랬어요. 막말로 까라면 깠음 좋겠는데, 그렇게 해주지 않으니 마구 싫은 소리를 했죠. 누군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상대가 증오스러워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어요.” 하지만 화를 퍼붓고 나면 고 대표 스스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울화통을 안고 사니, 잠을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고 씨는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시거나 스포츠 마사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늘 같은 패턴의 일상이 반복됐고, 어깨와 다리는 갈수록 뻣뻣해졌다.
고 대표가 요가를 시작한 건 3년전. 처음엔 순전히 운동으로 시작했다. 요가가 몸에 좋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20대 때 미국에 거주하면서 요가의 효능에 대해 자주 보고 들었다. 고 대표는 요가를 시작한 이후 실제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체험했다. “등산이랑 비슷했어요. 땀을 흘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죠.”
그는 지난해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요가에 빠져들었다. “작년 말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이 생겼어요. 거래처 일로 속상한 일이 많았죠. 나이가 드는 것도 실감하기 시작했고요. 배는 계속 나오고, 팔은 가늘어졌죠. 몸이 옛날 같지 않더라고요. 기왕 사는 거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요가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죠.” 고 대표는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요가를 수련했다.
그런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팔이 굵어지고 상체 힘이 좋아졌다. 원래 탄탄하던 하체에는 잔근육이 더 생겼다. 헬스할 때처럼 근육이 부풀진 않았지만 안으로 단단해졌다. 변화는 마음에도 찾아왔다. “전에는 마음이 조급했어요.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죠. 심지어 목욕탕에 가서도 수시로 전화를 체크했어요. 하지만 요가를 할 때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져요. 요가를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고 하잖아요. 인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단순하지만 잊고 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살아있는 느낌이 좀 더 충실해진다고 할까요.”
특히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겼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은 없잖아요. 매번 다음엔 화내지 말아야지 반성을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욱하며 감정대로 행동하고 다시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죠. 하지만 이제는 감정이 뻗칠 때에도 어떡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적절한 판단과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됐어요.” 고 씨는 이를 축구에 비유했다. 이전의 자기 모습이 마치 공밖에 보지 못하는 축구선수 같다면, 지금은 한 발 물러나 그라운드 전체를 조망하는 감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여유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하나는 명상과 커뮤니티의 힘이다. 고 대표가 다니는 요가원에서는 매일 수련을 마칠 때마다 잠깐 명상을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사는 건 아닌지 등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중요한 주제인데도 평소에 바빠서 생각 못하는 것들이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요.” 고 대표는 말을 잇는다. “원래 한국 남자들이 그런 걸 잘 못하잖아요. 낯 간지러워서 자기 얘기를 잘 못하죠. 그래서 술집 가서 모르는 여자들에게 털어 놓으며 거짓 위로라도 받곤 하는데, 요가원에서는 서로 진심으로 대해주니까 정말 마음에 위로가 되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관심 덕분에 자존감도 한결 높아졌다. 사실 화를 잘 내는 사람 중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 낮은 자존감을 숨기기 위해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 자존심을 건드리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불같이 화를 낸다. 고 대표 역시 이런 부분에 일정 정도 수긍을 했다. “사업 초기에는 사회경험이 적다는 걸 숨기기 위해 모든 걸 알고 파악하고 있는 척하고, 그런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했죠.” 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니 화낼 일 또한 적어졌다.
마음속 여유가 생긴 또 다른 원인은 몸과 호흡에서 찾을 수 있다. 화는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과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반응에서 비롯된다. 생물학에서는 화를 위협이나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정의한다. 잠재적인 위협이나 부조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 화가 날 때 우리 몸에선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아드레날린 호르몬이 분출돼 힘과 지구력이 늘어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높아진다. 장기로 가는 피가 줄고 팔과 다리로 몰린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코티졸이 분비돼 피도 끈적해진다. 이런 상태를 ‘싸움 혹은 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전투 태세로 돌입한다(비벌리 엔젤의 ‘화의 심리학’·용오름·2007년).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거나 자주 반복되면, 두통과 변비가 생긴다. 끈적해진 피로 혈관이 막혀 동맥경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 뒷골을 잡고 쓰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육도 경직돼, 목이나 어깨, 골반 부위도 뻣뻣해진다.
요가에서는 분노나 시기, 질투와 같은 나쁜 감정이 사타구니 즉 아랫배와 넓적다리가 만나는 팬티라인 부분에 쌓인다고 본다. 민진희 자이요가 원장은 말한다. “분노가 이글이글 끓어오르면 머리 끝까지 치솟습니다. 그게 입이나 주먹을 통해 터져나오면, 인간관계를 훼손합니다. 반대로 꾹 참으면 몸에 쌓이며 몸을 망치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무실 근로자는 사타구니 부분이 타이트하게 굳기도 하죠. 물길이 바뀌는 곳에 퇴적물이 쌓이잖아요.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도 비슷해요. 마치 사타구니에서 막혀 앙금이 침전되는 것과 같습니다.”
민 원장 역시 한때 분노와 스트레스로 심한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 민 원장은 잘 나가던 회계사였다. 세계적인 회계기업에서 일을 했고, 회계학원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부하직원을 쥐 잡듯이 통제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제풀에 쓰러져 한동안 전신마비를 앓았다. 그때 우연히 요가를 시작했는데, 몸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마음도 조금씩 치유가 됐다. 분노하던 자기 모습을 돌아보게 된 것도 이때였다.
호흡으로 분노를 삭이는 방법도 유용하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깊게 조절하면, 부교감신경계를 일깨운다. 부교감신경계는 휴식을 담당하는 신경계다. 근육이 이완되며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다. 뇌 혈류가 좋아지며 이성도 돌아온다. 요가에서 호흡은 마음과 몸을 연결해주는 다리다. 고 대표는 말한다. “돌이켜 보면, 저는 주변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제가 화를 낸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못하니까, 내가 화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니었어요. 사실 저를 정말 화나게 만드는 건 제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었어요. 요가를 하면서 이제는 제가 제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된 것 같습니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깊게 조절하면, 부교감신경계를 일깨운다. 부교감신경계는 휴식을 담당하는 신경계다.
화를 삭여 주는 호흡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호흡법이 쉬탈리 프라나야마(Cooling Breath)다. 혀를 길게 말아 반으로 접고, 입술 밖으로 살짝 내민 상태에서 입으로 숨을 들이쉰다.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을 통해 가슴, 복부에 이르도록 한다. 혀를 접지 못하면 입술 사이로 살짝 내밀고 입으로 숨을 마신다. 최대한 숨을 참은 다음 복부, 가슴, 콧구멍 순으로 숨을 내보낸다(고혈압이 있을 경우엔 숨을 오래 참아선 안 된다).
장요근을 풀어주는 요가
의자를 사용한 돌진(런지 lunge) 자세
한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다른 다리를 뒤로 뻗는다. 뒷다리의 장요근(허리와 다리를 이어주는 근육)을 최대한 늘려준다. 손은 굽힌 다리 위에 올려놓고, 상체를 곧게 편다. 의자 위 다리의 무릎은 90도로 굽힌다. 뒷다리는 발을 45도 각도로 벌리고, 허벅지를 단단하게 한다. 뒷다리 허벅지와 골반 앞면이 깊게 스트레칭되는 것을 느끼며 깊은 호흡을 3~5차례 반복한다.
삼각 자세
두 다리를 1m 간격으로 벌린다. 왼발은 90도, 오른발은 45도로 돌린다. 골반이 치우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게 한다. 양손으로 골반을 잡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척추를 길게 늘리고, 숨을 내쉬며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인다. 왼손을 왼 무릎 위에 가볍게 얹어놓거나, 바닥에 내려놓는다. 상체를 천정 쪽으로 회전하며 오른팔을 위로 뻗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