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츠 베뜨게 몽블랑 문화예술재단 이사장을 만나 몽블랑이 문화예술 후원자를 발굴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문화예술 후원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예술가보다 후원자가 더 적임이라는 박삼구 회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14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했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한평화 info@studiomuse.kr
몽블랑 문화재단은 매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0개국에서 문화예술을 적극 후원하는 인물에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해 올해가 23회째다. 한국에선 2004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해 오고 있다. 몽블랑은 후원자상 시상식과 함께 문화예술계 주요 인물을 모티브로 한 문화예술 후원자상 기념 펜도 한정판으로 선보이고 있다. 올해 한국에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후원자상을 수상했다.
포춘코리아는 지난 9월 24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시상식 직후 루츠 베뜨게 몽블랑 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나 이번 후원자상 선정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몽블랑 글로벌 CEO를 수행했던 루츠 베뜨게는 지난해 말부터 몽블랑 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골프를 치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은 그는 인터뷰 장에 미리 와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맞아주었다. 그는 몽블랑 CEO 시절 매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명품시계 수요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지역이라 최근 시계 비즈니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몽블랑에겐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었다. 문화재단 이사장 자격으론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의 문화예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방문할 때마다 느끼고 있다”며 “특히 한국인들의 자신감, 성공에 대한 확신 등이 인상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영자와 재단 이사장의 역할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묻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영자 시절에는 계획을 1년 단위로 수립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문화예술 후원자 발굴을 위해 그때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조력자와 좋은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창의적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도 예전과 지금이 다른 점입니다.”
그는 박삼구 회장이 문화 예술 후원자상 수상자가 된 배경에 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몽블랑은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습니다. 몽블랑이 선정한 전 세계 심사위원이 협의를 통해 수상자를 뽑죠. 저 역시 심사위원들이 밝힌 내용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바로 이 점이 몽블랑 후원자상 권위 유지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를 개최해 수상작들을 비행기 승객을 대상으로 상영한 점은 정말 창의적인 발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는 박삼구 회장이 지난 2003년 역량 있는 참신한 영화 인재를 발굴하고 국제적인 거장으로 키우기 위해 만든 영화제다.
왕실과 군주가 문화예술인을 후원했던 과거와 달리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활발한 지금, 굳이 후원자상이라는 타이틀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루츠 베뜨게 이사장은 이에 대해 “젊은 작가를 발굴해 오랫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이 같은 일은 성과를 중시하고 복잡한 의사결정을 거쳐야 하는 기업보단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산가나 기업가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인류 문화의 융성은 군주나 자산가들의 문화에 대한 후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진 데 따른 산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삼구 회장은 인터뷰에 앞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대개 후원자는 작가나 작품보단 다른 후원자에게 감동을 받아 후원을 결정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예술가 한 명보다 후원자 한 명이 더 설득력과 파장을 지닌다고 생각해요. 후원자에겐 문화예술을 지원하고자 하는 강한 애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츠 베뜨게 이사장은 박 회장의 이같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는 기업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기업이 만들어낸 문화와 예술은 기억한다”며 기업도 문화예술 방면에서 새로운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몽블랑은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에 맞춰 특별한 필기구 에디션을 선보여왔다. 올해 선보인 ‘2014 문화예술후원자상기념 펜은 ‘스타인웨이 에디션’이다. 88개 한정판으로 제작된 ‘스타인웨이 에디션’은 피아노 제작의 명인이자 그랜드 피아노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E. 스타인웨이를 기념한 제품이다. 루츠 베뜨게 이사장은 이 에디션 제작에 대해 “후원자의 인생을 펜에 담아 주고 싶었다. 그것을 지금의 후원자가 물려 받는 것이다. 후원자 정신을 계승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루츠 베뜨게 이사장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대중화로 펜의 의미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기자의 말에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 만년필 인기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운을 뗀 뒤 펜의 위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감성적 소통 기구는 여전히 필기구입니다. 얼마 전 SNS에서 나눈 대화는 보관하지 않지만 연애편지는 소중히 간직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전 이 말에 동감합니다. 감사나 축하 편지 한 장은 오히려 과거보다 지금이 더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그는 이사장에 취임하고 치른 첫 행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피력했다. “몽블랑 행사는 대개 1~2년 전부터 기획합니다. 내가 재단 설립에 관여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아직 나의 재임 기간이 짧은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시사성을 띤 문화예술 사업을 추가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몽블랑 후원자상 최초의 형제 수상자 탄생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10번째 한국 수상자다. 그가 열고 있는 국내 음악 영재를 위한 콩쿠르와 지역 예술가를 위해 지은 광주광역시 유스퀘어문화관 등 다양한 문화예술 후원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수상했다. 특별한 점은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한국 1회 수상자가 박삼구 회장의 큰형인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라는 것이다.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이 제정된 이래 형제가 수상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故) 박성용 회장은 예술의 전당 이사장, 통영 국제음악제 이 사장, 한국 메세나협의회 회장을 지내며 한국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박삼구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선친인 박인천 창업주와 큰형님이 문화·예술 후원활동을 펼치면서 내세운 말이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였다”며 “두 분의 뜻을 계승하고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게 저의 사명”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삼구 회장은 후원자상 수상자로서 받은 상금 1만 5,000유로를 한국문화산업 발전을 위해 통영문화예술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