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루클린의 눈 내리는 저녁. 필자는 쏟아지는 땀에 온몸이 젖었다.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내의 온도가 정확히 몇 도 인지는 몰랐지만 마치 사하라 사막에 누워 있는 느낌이었다. 겨울용 바지와 셔츠를 어떻게든 벗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MRI 촬영기사가 마이크를 통해 움직이지 말 것을 상기시켰다. 움직이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45분이나 꼼짝 못하고 누워있었던 터라 설령 다시 촬영하더라도 일단은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필자를 괴롭혔던 것은 더운 것만이 아니었다. MRI 필름에서 혈관이 밝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마셨던 가돌리늄(Gd)조영제 때문에 몸 속이 가려워 미칠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여기온 이유에 집중하기로 했다. 필자는 7년 동안 어깨 통증에 시달려왔다. 왼쪽 견갑골 아래에서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물리치료와 운동요법, 입식 책상, 지압, 침술 등 안 해 본것이 없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통증은 그 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 일을 할 때건, 해변에서 휴일을 즐길 때건, 잠을 청할 때건 항상 곁에 있었다. 정상적 생활을 위해선 뭔가 혁신적 치료법이 필요했다. 이날의 MRI 촬영은 바로 그 첫 단계였다.
II.
촬영 후 1주일이 지나 마크 버먼 박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성형외과 의사다. 주름제거와 유방 확대 분야에서 나름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LA 비벌리 힐스의 본원에 더해 팜스프링스 지역에 분 원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필자의 추간판 4개가 제자리를 이탈했지만 통증의 원인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MRI필름상 왼쪽 견갑골에서는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다시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덮쳐왔다. 이런 실망감을 눈치 챈 듯 그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에요. 만성 염증 환자들 가운데는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레이엄 씨는 저희 연구의 후보 자입니다.”
그렇다. 필자는 버먼 박사의 새로운,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받아 보기로 자원했다. 그 치료법은 다름 아닌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추출, 정맥에 주입해 순환시키면 탈출한 추간판이나 찢어진 인대, 관절염을 가릴 것 없이 염증이 생긴 부분을 알아서 찾아내 고쳐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현재까지 이 치료법의 과학적 기반은 취약 하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계량화된 증거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버먼 박사도 이를 인정한다. 다만 자신의 치료기록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껏 1,000명 이상의 환자들을 완치시켰다면서 직접 취재해봐도 좋다며 그들 모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넘겨줬다.
리스트에는 전 세계복싱기구(WBO) 헤비급 챔피언인 라몬 브루스터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2010년 브루스터는 핀란드의 거인 복서 로버트 헬레니우스 선수와의 경기 도중 8라운드에서 얼굴에 치명타 를 여러 번 맞았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고, 브루스터는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며칠이 흘러 그는 자신의 각막과 홍채가 심각하게 손 상됐음을 알게 됐고, 수개월 뒤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시력 회복이 불가 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그는 버먼 박사의 새로운 치료법을 전해 듣고 기꺼이 임상시험 대상이 되기로 자원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효과는 기적과도 같았다.
"줄기세포 요법을 받은 지 수개월 뒤부터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 시력이 좋아졌습니다."
시력만이 아니었다. 몸의 다른 부분들도 개선됐다.
"오랜 기간 복싱을 했던 탓에 만성통증에 시달리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졌답니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결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필자도 많은 사람들이 버먼 박사의 줄기세포 요법에 대해 허망한 기대를 품게 만들고, 위험성마저 높은 엉터리 치료법이라 판단하고 있음을 잘알고 있다. 그러나 만성 통증은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도 비합리적으로 만든다.
필자 역시 버먼 박사와의 전화상담을 끝내자마자 LA행 항공기 티켓을 끊었다.
III.
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줄기세포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재생의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본격 연구된 지는 15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15년간 과학자들은 재생의학의 기본을 파악했다. 줄기세포가 두 가지 목적, 즉 배아속에 넣어 모든 인체조직으로 분화시키거나 완전히 성장한 조직을 보수 및 대체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줄기세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배아에서만 발견되는 배아줄기세포와 몸 전체에서 발견되는 성체줄기세포다. 이중 배아줄기 세포는 인체를 구성하는 220개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될 수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보통 그 출처가 된 조직으로 분화된다. 예를 들어 골수에서 얻은 성체줄기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되는 경향이 강하며 신경세포로는 분화되지 않는다.
버먼 박사의 경우 성체줄기세포를 사용한다. 시술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먼저 환자의 지방을 소량 채취한 뒤 효소를 첨가해 세포들을 고정해주던 담체를 분해한다. 이어서 원심분리기에 넣어 각 구성요소들을 분리, ‘ 기질혈관분획(SVF)’을 얻는다. SVF는 각종 성장인자와 줄기세포, 혈소판, 내피세포, T세포, 적혈구, 백혈구들의 혼합물로 이를 환자에게 재주입하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타당한 방법이다. 줄기세포는 조직의 보수를 돕기 때문에 손상 부위에 주입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기본적 타당성의 이면에 문제가 하나 숨어 있다. 우리가 줄기세포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특정 줄기세포가 A와 B조직으로는 분화하면서 C조직으로 분화가 안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줄기세포가 지닌 세포 복제 능력의 근원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줄기세포가 언제 오작동 을 일으켜 악성종양이 될지 예측할 능력도 없다. 쉽게 말해 줄기세포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내기 전에는 줄기세포 요법의 위험성이 없다고 확신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관련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는 것. 지난 수년간 뇌졸중, 척수 손상, 파킨슨병 등의 치료를 위한 다수의 줄기세포 요법 임상시험이 시작됐으며 미 식품의약국 (FDA)도 8개의 성체줄기세포주를 대상으로 심장과 뼈, 연골의 재생능력을 조사 중에 있다. 최근에는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할 줄기세포 치료제가 성공리에 임상 1상을 마치기도 했다.
SVF요법은 버먼 박사 를 포함한 다수의 의사 들에 의해 이미 임상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보증도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버먼 박사조차 명확한 작용기전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그동안 임상에서 확인된 효과들이 줄기세포라는 단 하나의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추론한다. SVF에 함유된 줄기세포에 더해 성장인자나 T세포들도 고장 난 조직의 복원에 기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SVF 요법은 현 기술로 파악하기에는 작용 기제가 너무 복잡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치료법을 제안하는 버먼 박사의 행위가 불법적인 걸까. 그는 불법적이거나 윤리적 규범에 반하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대학 재생의학연구소의 앤서니 아탈라 소장도 버먼 박사가 치료 불가능 질환들을 치료해내고 있으며, 효과가 놀라운 수준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아탈라 소장은 통제된 연구를 통한 작용기전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 없이 SVF요법을 받는 것은 치료효과를 놓고 벌이는 도박과도 같다는 주장이다.
IV.
MRI를 받고 몇 주일 후 필자는 2단계 처치를 위해 버먼 박사의 팜스프링스 클리닉을 방문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먼 박사는 오늘 성형외과의 기본기인 지방흡입술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진찬실로 들어가 침상에 엎드리자 버먼 박사는 필자의 셔츠를 걷어 올리고, 지방이 풍부한 왼쪽 옆구리에 마취제를 놓았다. 그러면서 마취제는 줄기세포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너무 깊게 주사하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취 후 그는 옆구리 살을 6mm가량 절개해 튜브르 꼽고, 지방흡입을 시작했다. 큰 통증은 없었고, 10여분 만에 시술이 끝났다. 채취한 지방을 실험실 엔지니어에게 건넨 버먼 박사가 필자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1시간 정도 기다리면 SVF 샘플이 완성 됩니다. 이제 곧 SVF가 순환계를 따라 온몸에 퍼질 거에요."
최첨단 줄기세포 치료제라고 하기에 이 과정은 지나치게 간단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다수의 임상결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SVF요법의 효과에 의구심을 표명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생명윤리센터 레이 터너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SVF 요법의 효과와 안전성은 아직 입증된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떤 보증도 없는 이런 치료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어요."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 재생의학연구소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폴 크뇌플러 박사는 한층 자극적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사실상 영리 목적의 인간 생체실험입니다.”
크뇌플러 박사에 따르면 SVF 속 줄기세포가 원치 않은 부 위에서 뼈나 연골로 분화할 개연성을 배재할 수 없다.
“포르투갈의 한 여성 환자가 마비증상 치료를 위해 코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등에 이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8년 뒤 그녀의 척추에서 코 조직 덩어리가 발견됐어요. 러시아에서도 태아줄기세포로 신경 장애 치료를 받은 10대 학생에게 뇌종양이 생긴 사례가 있습니다.”
두 사례 모두 SVF 요법은 아니었지만 위험성 자체를 좌시하는 것도 현 단계에선 옳지 않다. 최근 염소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SVF가 척추 염증과 추간판 퇴행을 심화시킨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먼 박사는 SVF의 안전성을 확신하고 있다. 1,000여명이나 되는 환자에게 시술을 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은 단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 자신의 치료사례를 담은 연구논 문을 미국립생물정보센터(NCBI)의 생물의학 논문검색 엔진‘펍메드(PubMed)’와 미 국립보건원(NIH)의 임상시험 정보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 Clinicaltrials)’에 등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년전 그는 지방줄기세포 의료진들의 네트워크인 ‘CSN’도 결성했다. SVF 요법을 시행중인 심장병 전문의와 방사선 전문의, 마취과 의사, 신경외과의 등 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SVF 요법을 실시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될 겁니다.
”버먼 박사는 안전성과 관련한 추가 근거로 2000년대 초 또 다른 부류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던 SVF 요법의 성공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줄기세포 치료 서비스 업체인 벳스템은 경주마들에게 이 요법을 시술했다. 인간보다는 동물이 법·제도적, 윤리적 제약에서 훨씬 자유로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애리조나주에서 경주마 외과 진단센터를 운영했던 수의사 로스 리치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저도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죠. 하지만 고가의 말이 온갖 치료에도 18개월 동안 차도가 없자 마지막 수단으로 마주에게 SVF 요법을 권했습니다.”
환부에 SVF를 주입하고 3개월 뒤 그 말은 완치됐다.
“과거에는 그런 질환에 걸리면 경주마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 했어요. SVF 요법 덕분에 이제는 별 것 아닌 질환이 되어 버린 거죠.”
벳스템의 주장에 의하면 SVF로 완치시킨 말이 수천 마리가 넘는다. 특히 리치는 말을 대상으로 한 SVF 요법의 성공률이 80~90%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탁월한 효과를 직접 목도한 리치는 아내와 함께 무릎과 등, 발목의 통증을 없애려고 직접 SVF 시술을 받기까지 했다.
“저와 아내 모두 기대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V.
시술을 기다리던 필자에게 1,000여명의 사람과 수천 마리의 말이 완치됐다는 얘기는 큰 위안이 됐다. 그럼에도 끝까지 걱정되는 구석이 있었다. 치료 효과를 본 대다수 환자들은 SVF 요법을 시술받은지 수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말에게는 오랜 기간 효과가 지속된다고 하지만 필자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필자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떠나면 옆구리의 지방을 잃은 것으로 끝나지만 SVF 주사를 맞는 순간 물러설 길은 없었다. 앞으로도 만성통증을 앓으며 살아갈지, 아니면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SVF 요법을 계속해야할지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내재된 우유부단한 성격이 극에 치달을 무렵 SVF가 들어있는 약병을 든 간호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병 안에 줄기세포 5,000만개가 들어 있다고 했다. 또 대부분은 정맥주사로, 일부는 통증 부위인 왼쪽 견갑골 아래에 직접 주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을 굳힌 필자는 셔츠의 소매를 걷어 정맥주사를 놓으라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준비가 됐음을 알렸다.
주사바늘이 팔을 뚫고 정맥 속에 SVF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SVF가 정맥을 따라 몸전체를 순환하면서 염증부위를 발견해 치료한다는 설명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특정 조직에서 얻은 성체줄기세포가 유전학적 재프로그래밍 없이 다른 조직의 염증 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불명확한 상태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부디 이것이 대실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30여분이 흐르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들어와 등의 통증에 대해 물었다. 왼쪽 견갑골과 척추 사이 어디쯤이라고 답하자 어딘지 알겠다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누르더니 정확히 통증부위를 찾아냈다.
“거기예요. 거기서 통증이 느껴져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에 시술하겠습니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SVF가 어깨에 주입됐고, 잠시 후 필자는 클리닉을 떠났다.
VI.
주지하다시피 SVF 요법은 분명한 합법이다. 그렇더라도 그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작년 12월 F DA는 지방유래 줄기세포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발표했다. 버먼 박사에겐 결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FDA의 기본적인 규제대상은 ‘약품’이지 ‘수술’이 아니다. 그런데 왜 SVF 요법에 규제의 잣대를 들이댄 것일까.
적어도 생물학 요법의 경우 약품과 수술의 차이는 ‘최소한의 조작’ 여부에 의해 구분 된다. 환자의 인체에서 적출된 조직이 원래의 특징을 유지한 채 쓰이면 최소한의 조작으로 간주돼 수술로 분류된다. 반면 적출된 조직이 원래의 특징을 잃어버리면 FDA는 그 요법을 약품으로 본다. 또한 약품을 사용한 요법은 막대한 시간과 돈이 투입되는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FDA는 초안을 통해 지방 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최소한의 조작을 초과하는 수준의 조작이 가해졌음을 분명히 했다. 효소를 활용한 담체 분해, 원심분리기에 의한 분리과정을 거쳐 일반적 지방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얻는다는 것이다.
레이 터너 교수는 FDA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향후 줄기세포 요법에 규제가 가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좋은 증거라고 말한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SVF 클리닉들이 아직 태평스러운 이유죠. 앞으로도 더 많은 SVF 클리닉들이 생겨날 겁니다. 그렇게 상황이 무르익으면 규제에 관한 논의가 본 격화될 것입니다.”
버먼 박사에게 전화 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 “FDA가 가진 모든 권한의 목적은 전염병 전파 방지로 귀결됩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설령 SVF 제조에 FDA 승인을 얻지 못하더라도 SVF에 의한 전염병 전파 위험이 없는 한 의사로서 저희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버먼 박사는 이런 저런 상황이 정리되는 동안 CSN을 통해 환자들이 자신의 줄기세포를 저장해놓을 수 있는 극저온 저장소를 설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줄기세포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제대혈이나 여성의 난자처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줄기세포를 저장해 놓으면 미래의 질병을 손쉽게 물리칠 수도 있습니다. 이식수술은 구시대적 치료예요. 미래에는 줄기세포 보관업체에 의뢰하는 것만으로 하루만에 신체 손상을 고치게 될 겁니다.”
VII.
SVF 요법을 받고 1주일이 지났다. 집안일을 하던 필자는 7년 만에 처음으로 등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여러 줄기세포 관련 사이트에는 이런 개선효과가 그날그날의 컨디션 때문이지 줄기세포 치료 때문이 아닐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통증이 사라진 것은 플라시보 효과나 다른 요법, 혹은 자연치유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필자는 기존의 어떤 치료로도 위약 효과를 경험하지 못했다. 또한 SVF 요법과 병행해 어떤 요법도 시도하지 않았다. 7년 만에 자연 치유됐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된다. 이후 메인 주(州)로 자가용을 운전해 출장 갈 일이 생겼다. 뉴욕에서 메인까지는 6시간이 걸리는데 출발 후 2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다시 도지는 것을 느꼈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통증은 끊임없이 필자를 괴롭혔다.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며칠 후 버먼 박사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더니 긍정적 태도를 유지하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가끔씩 통증이 돌아왔다가 다시 물러갈거예요.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세요.”
실제로 통증은 시시때때로 느껴지다가 조금씩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3개월 뒤부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운전을 하거나 운동을 해도 통증은 없었다. SVF 요법을 시술받은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단 한 번도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드디어 통증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마냥 기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 라몬 브루스터 선수의 왼쪽 눈 시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필자의 통증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적잖이 두렵다.물론 브루스터 선수는 예외적인 사례다. 필자와 대화한 대다수 환자들은 정상적 삶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의 사례는 억지로라도 잊으려 했던 사실을 새삼 떠올려 줬다. 실험용 모르모트가 되는 계약서에 서명할 때는 아무 것도 확실치 않으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모든게 확실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SVF - Stromal Vascular Fraction.
CSN - Cell Surgical Network.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 약효가 없는 약을 진짜 약이라고 속여서 환자에게 복용을시켰을 때 환자의 심리적 믿음에 의해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 ‘ 위약(僞藥) 효과’ 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