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0대 그룹은 지금, SK그룹] 지배구조 단순화·사업 시너지로 그룹 실적 개선 돌파구 찾는다

SK(주) - SK C&C 전격 합병의 의미

SK그룹의 IT서비스 전문기업 SK C&C와 지주회사 SK(주)의 합병이 결정됐다. 이번 양사의 합병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양사의 시너지 창출이라는 두 가지 포석이 깔려있다. 시장에서는 양사의 합병이 몰고 올 파장에 주목하며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쏟아내고 있다분명한 사실은 양사의 합병이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는 SK의 사업전개에 긍정적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란 점이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SK그룹의 지난 2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대다수 계열사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최 회장이 추진해온 굵직한 사업에 잇달아 제동이 걸렸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며 오너의 공백을 최소화했음에도 시장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우선 주력계열사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창사 이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무려 5,317억 원에 달했다. 이는 친환경 플라스틱, 리튬이온 2차전지 등 SK이노베이션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신사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2차 전지 사업의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분야다. 하지만 2년에 달하는 총수의 부재는 곧 전략적 투자의 실패로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도 과감한 투자보다는 현상 유지에 무게를 싣고 있다.

SK텔레콤 역시 실적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SK텔레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 8,251억 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9.2%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SK그룹은 인수 · 합병(M&A) 시장에서도 연이어 실패의 쓴잔을 맛봤다. 조 단위의 대형 M&A는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 변수로 작용한다. 최 회장의 공백은 당장 M&A 실패라는 결과 이전에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그룹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사례는 국내 1위 렌터카 업체인 KT렌탈 인수전에서의 패배다. 당시 SK그룹은 SK네트웍스를 앞세워 KT렌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업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롯데에 패배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대규모의 투자에는 실시간 대응과 이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며 “여러모로 최 회장의 부재가 아쉬웠던 인수전”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SK그룹은 STX에너지, STX팬오션, ADT캡스, 호주 유류공급업체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UP), 일본반도체기업 엘피다 등 굵직한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태원회장의 ‘옥중경영’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당연한 평가였다. 그룹총수가 주된 의사결정을 내리면 전문경영인들이 나머지를 담당하는 것이 국내 재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최 회장의 공백으로 경영의 주축이 부재한 상황에서 SK그룹의 성장을 기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최 회장의 구속 이후 사실상 SK그룹의 경영 전반을 담당해온 경영자 최고 협의 기구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의 김창근 의장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SK 행복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불황이 지속 되면 허리띠를 졸라매 비용을 줄이고, 부분적으로 사업을 변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모양을 아주 바꾸기란 쉽지 않죠. 최선을 다해 최 회장의 공백을 채우려 노력하지만, 노력한다고 메워지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최 회장 역시 자신의 공백으로 위기에 처한 SK그룹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 회장은 칼을 꺼내 들었다. SK(주)와 SK C&C의 합병을 결정한 것이다.

두 회사의 합병은 기형적이었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그룹이 직면한 위기를 정면 돌파해 성장의 초석을 닦겠다는 최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주)와 SK C&C는 최근 열린 이사회를 통해 양사 합병을 전격 결의했다. 미래 신성장동력 확보 및 지배구조 혁신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통합법인 출범을 선언한것이다.

SK C&C와 SK(주)는 각각 약 1대 0.74의 주식 비율로 합병한다. SK C&C가 신주를 발행해 SK(주)의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 합병 방식이다. SK브랜드의 상징성과 그룹정체성 유지 차원에서 합병회사의 사명은 SK주식회사로 결정됐다. 주주총회 승인이 마무리되면 오는 8월 1일 합병절차가 마무리된다.

SK그룹의 불완전한 지배구조 문제는 그동안 그룹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난 2007년 지주회사체제 전환 이후 SK그룹은 최 회장이 SK C&C를 통해 지주회사 SK(주)를 지배하는 옥상옥(屋上屋, 지붕 위에 지붕을 거듭 얹는다는 뜻)의 간접지배 형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합병을 통해 SK그룹과 최 회장의 지배구조는 기존에 비해 훨씬 간결해졌다. ‘최 회장→SK(주)→자회사’로 이어지는 단순한 지배구조가 확립되는 것이다.

최 회장의 지배력에도 큰 문제는 없다. 합병을 통해 최 회장은 새로운 합병 지주 회사의 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이전까지 최 회장은 SK C&C 지분 32.92%를 보유하고 있었다. SK C&C는 SK(주)의 지분 31.82%를 보유하고 있는데, SK C&C와 SK(주)의 합병으로 최 회장은 이전보다 9%가량 줄어든 합병법인 지분 23.4%를 확보하게 된다. 최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역시 종전 SK C&C 지분 10.5%보다 조금 줄어든 7.46%의 합병법인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여기에 최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신원 SKC 회장 등이 받는 합병회사 신주를 더하면 최대주주 지분은 30.9%에 육박한다. 이는 그룹 지배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옥상옥 지배구조 논란 8년 만에 최대주주가 직접 지주회사의 대주주로 나서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완벽한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합병회사는 총자산 13조 2,000억 원의 명실상부한 그룹의 지주회사로서 새 출발하게 된다”며 “안정된 지주회사 체제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 추진과 동시에 여론과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제기해 온 지배구조 혁신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이번 합병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합병으로 그간 비난받던 지배구조 이슈를 해결하게 됐다”며 “합병회사는 SK(주)의 배당 수입과 브랜드 로열티 수입을 기반으로 IT서비스 사업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합병법인은 신성장 동력으로 SK E&S의 LNG 가치사슬 통합, SK바이오팜의 신약 개발, 새로 인수할 반도체 소재 사업, 기존 SK C&C의 반도체 모듈 사업을 꼽았다”며 “합병법인이 성장성과 안정성이 높은 신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게 된 것은 합병의 긍정적 요소”라고 평가했다.
새로 출범할 합병회사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자연스레 합병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양사의 통합 전략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SK(주)와 SK C&C는 합병이 결의된 지난 4월부터 ‘합병 후 융합(PMI, Post Merger Integration) 태스크포스팀’ 을 마련하고 통합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합병회사 SK(주)는 기존 두 명의 대표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주회사 기능과 사업회사 기능을 나눠 운영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게 됐다. 물리적 통합보다는 별도 체제로 운영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우세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합병회사 SK(주)의 사령탑은 현 조대식 SK(주) 사장과 박정호 SK C&C 사장이 각자 대표이사를 맡아 두 사업영역을 각각 책임지는 투톱 형태로 출범한다.

조대식 사장은 재무와 사업을 두루 거친 현장형 CEO로 손꼽힌다. 특히 최태원 합병 후 SK(주)의 지분구조 최태원 회장23.4 국민연금 7.8 총수 일가 30.9자료제공: SK (단위: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정호 사장은 1989년 입사 후 SK텔레콤 해외사업팀, 사업개발 부문장등을 역임했다. 특히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등 M&A 전문가로 그룹 내 명성이 높다.
한편 양사 직원들은 합병 전처럼 기존 SK(주) 직원은 SK 서린빌딩, SK C&C 직원은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SK 유타워 사옥에서 근무한다. 별도의 인력 재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통합전략 마련에 성공한 SK(주)의 미래 청사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주)와 SK C&C는 최근 열린 애널리스트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5대 성장 영역 육성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매출 200조 원 달성과 세전 이익 10조 원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IT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융합 ▲반도체 소재 ▲반도체 모듈 ▲액화천연가스(LNG) ▲바이오 · 제약등을 5대 신성장 사업으로 정하고 집중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합병회사의 주요 사업은 SK C&C가 기존에 영위하던 ICT 사업에 기반을 둔다. 기존 SK C&C의 ICT 사업성과와 SK주식회사의 자금력, 브랜드 가치 등이 더해진다면 더욱 큰 성장을 노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설명회에서 발표한 IT서비스와 ICT의 융합, 반도체 소재, 반도체 모듈 사업 등의 핵심 사업군은 SK C&C가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신성장 동력의 핵심이다.

그동안 SK C&C가 보여 온 경영전략의 핵심은 ‘탈IT’였다. 기존 ICT 사업군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왔다. 지난 2012년 SK에너지의 중고차 유통 계열사인 ‘엔카네트워크’를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엔카네트워크’를 합병하며 중고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온라인 자동차 유통 자회사인‘SK엔카닷컴’을 설립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SK C&C의 주력사업으로 떠오른 반도체 모듈 분야의 경우,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에 날개를 달 전망이다. 합병을 통해 확보하게 될 풍부한 자금을 기반으로 글로벌 정상급 반도체 모듈 기업 인수에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SK C&C의 반도체 모듈시장 진출 역시 지난 2013년 홍콩 스마트기기 유통업체인 ISD테크놀로지를 인수한 것 이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향후 합병회사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임베디드 멀티미디어카드(eMMC) 등 고부가가치 포트폴리오의 확대, 반도체용 소프트웨어 자체 개발 및 글로벌 사업 확대를 기반으로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톱3’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LNG 사업부문은 LNG밸류체인(LNG Value Chain) 확장을 통해 오는 2020년에는 LNG 도입규모를 500만 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LNG밸류체인’은 ‘LNG 생산→액화 및 운송→도입→국내외 발전소 등 수요처’로 이어지는 ‘LNG 수직계열화’를 일컫는 LNG사업의 핵심 전략이다. 제약 부문의 경우 신약 개발과 생산,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통합제약기업, 이른바 ‘핍코(FIPCO, Fully Integrated Pharma Company)’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핵심 전략 사업인 중추신경계 분야 신약 개발에 집중함과 동시에 신약개발업체의 M&A도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옥중경영이 이번 SK(주)와 SK C&C의 합병에 그치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근거는 바로 SK하이닉스의 경쟁력 확보다. SK C&C가 반도체 분야를 주력사업으로 정한 만큼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를 위한 또 다른 개편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SK 하이닉스는 SK텔레콤의 자회사다. 소위 ‘ 손자 회사’ 로 불린다. 공정거래법상 손자 회사는 인수합병(M&A)이나 사업 확장에 제약이 많다. 자연스레 업계 전문가들은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지주회사인 SK(주)의 자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SK그룹 지배구조의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하이스를 SK(주) 밑에 두는 형태다. SK텔레콤을 투자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투자회사를 SK(주)와 합병하면 통신과 반도체 부문을 SK(주)가 직접 영위하게 된다. 추가 지배 구조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SK( 주)와 SK C&C의 합병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존재한다. 바로 내부거래 비중의 축소다. SK C&C는 SK그룹 계열사의 IT서비스를 전담해오며 규모를 키워온 회사다. 지난 2013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안 통과에 맞물려 내부거래 비중 축소에 나섰지만,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또는 친족이 지분 30%(비상장사 20%) 이상을 보유중인 계열사에서 내부거래 매출액이 12% 혹은 200억 원 이상인 기업이다. 최 회장이 30% 이상의 SK C&C 지분을 가진 상황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합병 이후 내부거래 비중을 절반 가까이 줄이거나 지분율을 30% 이하로 낮춰야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이번 합병은 무관하다”며 “단순히 지배 구조 혁신을 위한 합병”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다수 업계 전문가는 이미 SK C&C가 내부거래 비중 축소를 위해 내세운 신성장 사업에서 구체적 성과를 거둔 만큼 내부거래 관련 규제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오너 부재와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은 SK그룹은 새로운 지주회사 출범이라는 혁신안을 꺼내 들었다. 주사위 던져졌다. 최 회장을 중심에 둔 지배구조 개편으로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SK그룹의 미래에 관심이 집중된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