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R는 인류가 직면한 화석 연료의 고갈 위험과 환경 문제에 대비해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최종 실증하기 위한 초대형 국제협력 연구·개발 프로젝트다. 지난 1985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핵융합 연구개발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1988년 공식 출범했다.
초기 멤버는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등 4개국이었지만 핵융합 연구 후발주자인 한국과 중국이 2003년, 인도가 2005년에 합류하면서 총 7개국으로 ITER 국제기구(IO)가 구성됐다. 사업비는 총 71억1,000만 유로(약 8조8,300억원)며 EU가 45.46%, 나머지 국가에서 각각 9.09%씩을 분담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사전연구와 준비작업 끝에 지난 2007년 드디어 생폴레뒤랑스의 카다라슈 지역에 열출력 500㎿, 에너지 증폭율(Q) 10 이상의 ITER 건설이 시작됐다. 회원국별로 할당된 주요장치들을 각국에서 제작·조달한 후 카다라슈 현장에서 조립해 완성할 계획이며, 완공 예정은 오는 2020년이다.
버트 아녹스 IO 홍보담당자에 따르면 “유럽의 분담금이 많은 것은 주관 국가인데다 ITER 건설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가장 많이 얻기 때문”이라며 “세계 에너지 소비가 1973년부터 현재까지 50%나 늘었고, 2030년까지 추가로 60%가 늘 것으로 예상돼 ITER 프로젝트의 성공은 인류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인공적인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넓게 펼쳐진 카다라슈 지역 40㏊ 규모의 광대한 평야에는 현재 토카막과 조립 빌딩, 연료주기건물 등의 바닥 기반 공사를 끝내고 핵심시설 건설을 위해 철근과 기둥을 쌓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00여명, 많을 때는 하루 4,000명의 근로
자가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ITER 건설현장을 둥근 시계판이라고 가정할 때 ITER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토카막이 시계판의 정중앙에, 조립빌딩은 7시부터 10시 방향에 터를 닦아가고 있다. 높이 60m의 거대한 흰색 기둥이 10여개씩 늘어서 있는 조립빌딩은 IO 회원국들이 보내온 구성품을 조립하기 위한 공간이다.
토카막의 경우 토카막 특유의 도넛 모양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철근들이 둥근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패티슨 로랑 ITER 원자력건물건설팀장에 의하면 그 아 래에는 지하 2 층 규모의 내진설비가 갖춰져 있다. 실제로 건설현장 앞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을 한층 강화한 내진 설비 내용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었다. 또한 그는 회원국들이 보내오는 부품의 무게가 80톤부터 1,000톤까지 천차만별인 만큼 이에 맞춰 조립빌딩에 1,500톤 규모의 크레인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건설현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서 자리를 옮겨 조립빌딩 뒤편의 PF(Poloidal Field) 코일 조립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시계판 4시와 5시 방향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테니스코트 크기의 연못 5개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로랑 팀장은 핵융합 발전 과정에 투입되고 남은 열을 식히기 위한 인공연못이라고 했다.
이윽고 도착한 PF 코일 조립동은 배송되어온 PF 코일을 낚싯줄을 릴에 감듯이 감는 공간이다. 이 코일은 토카막 안에서 자기장을 발생시켜 플라즈마를 원하는 모양대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직은 건물 외관만 완 공돼 내부는 비어있는 상태였다.
이와 관련 정기정 국가핵융합연구소 ITER 한국사업단장은 “현재 ITER의 실험로 건설은 10%도 진행되지 않았지만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의 막대한 재원과 노력을 투입해 착실히 건설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총 33명이 IO에 근무 중에 있으며 초전도 도체와 진공 용기 본체, 포트, 블랑켓 차례블록, 열차폐체 등 10개의 조달 품목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올 4월까지 IO를 통한 연구개발과 설계용역, 그리고 다른 회원국의 조달품목 등에서 총 84건 3,097억원 규모의 수주를 일궈내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이 이렇게 합심해서 ITER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이유는 미래의 에너지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가장 효율적인 대안으로 핵융합이 꼽히기 때문이다.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합쳐져 무거운 원소가 될 때 감소된 질량이 막대한 열에너지로 방출되는 현상을 이용한다. 핵융합로를 인공태양이라 부르는 것도 태양이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핵융합 반응은 핵분열 반응에 기반한 원자력보다 안전성이 뛰어나며, 원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리튬)를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어 사실상 무한에너지라 할 수 있다. 에너지 발생 효율도 뛰어나 욕조 하나 분량의 바닷물과 노트북용 배터리 1개에 들어가는 리튬만으로 석탄 100톤이 내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ITER의 핵융합로가 0.8㎎의 중수소와 삼중수소로 생산 가능한 에너지는 난방유 7,570ℓ에 맞먹는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나 방사성 폐기물은 전혀 배출하지 않고 말이다.
마크 핸더슨 IO 가열장치부서장은 “신재생에너지는 화석 연료만큼 효율적이지 못하고, 원자력 발전도 핵폐기물이라는 환경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핵융합은 가장 도전적이지만 가장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ITER의 7개 회원국은 우리나라의 KSTAR를 비롯해 대부분자체 핵융합 연구로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은 연구가 미진한 수준이다. 때문에 ITER를 통해 기술 선진국들의 노하우를 한데 모아 하루 빨리 핵융합에너지의 상용성을 실증하고자 한다.
ITER 한국사업단의 경우 KSTAR와 ITER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는 2040년대에 핵융합 에너지를 상용화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 이는 핵융합 실험로 ‘이스트(EAST)’를 운용하면서 2030년대까지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계획을 천명한 중국에 이어 가장 빠른 목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핵융합 에너지 개발 계획은 여타 선진국들에게 일종의 가 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단장은 “ITER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첫째가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국내의 자원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에 이어 가장 적극적으로 핵융합 에너지에 투자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밝혔다.
물론 핵융합 에너지를 실용화하려면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국의 자금 조달 문제와 원자력 발전을 기준으로 묶여 있는 각종규제 등이 그것이다. 덧붙여 핵융합 장치 개발 기술이 제각각이다 보니 각국마다 부품 개발이 혼재돼 있다는 점도 사업 진척도를 늦추는 요인으 로 지적된다.
INTERVIEW
베르나 비고 신임 ITER 사무총장
“회원국 역량의 통합을 통 해 ITER 프로젝트를 한층 강력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ITER 국제기구(IO)의 베르나 비고 신임 사무총장은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올 3월 취임 후 처음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응한 그는 ‘주어진 계획에 맞춰 7개 회원국의 과학적 역량을 통합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규정했다. 또한 ITER와 같은 국제적 프로젝트는 한번 결정이 지연될 때마다 엄청난 비용이 추가 된다면서 적시의 의사 결정과 업무 추진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각국 사무국으로 분산된 운영 방침 대신 강력한 중앙 의사결정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이를 통해 현재 명확한 해답 없이 계류 중인 일부 이슈들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한 다고 덧붙였다.
“ITER처럼 큰 조직의 방향을 정하려면 운전석에 한 명만 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쟁만 이어져 아무런 결론도 얻을 수 없게 된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ITER가 조속한 핵융합 에너지 개발이라는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ITER 프로젝트는 각 회원국들이 부품들을 나누어 제작한 뒤 카다라쉬의 건설현장으로 운송·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각국의 일정이 서로 달라 일부 부 품의 제작·운송 일정에 차 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비고 사무총장은 취임 이후 ITER의 기술적 방향 변화보다는 효율적 조직 운영을 통한 일관성 있는 프로젝트 추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올 11월 각국의 부품 조달과 ITER 건설의 새로운 일정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1,000개사 이상의 기업들과 7개 회원국 등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 계획을 수립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국들의 신뢰를 얻고 이를 지키는 운영을 펼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토카막 (tokamak) 초전도 자석으로 자기장을 생성해 플라즈마가 안정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