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개각으로 이기호(李起浩) 전 노동부장관이 청와대 경제수석이 되면서 한이헌(韓利憲)-이석채(李錫采)-이기호(李起浩)로 이어지는 행시 7회 출신 경제수석들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새삼 관가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이들은 서울상대, 행시, 경제기획원 동기에 이어 차례차례 청와대 경제수석 자리에 오른 기묘한 인연의 주인공들.
기획원 사무관 시절부터 「7회 트로이카」로 꼽혔던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면서도 업무에 있어서는 치열한 경쟁관계를 형성했던 이른바 「외우(畏友)」로 통한다. 비상한 두뇌회전과 꼼꼼한 일처리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의의 경쟁을 벌여 온 것.
특히 관료로서 이들 세사람의 이력을 살펴보면 공직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출신지, 능력, 개성이 정치세력의 흥망과 얽혀 어떻게 피어나고 꺾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李수석은 韓전수석과 李전수석이 먼저 경제부처 실세반열에 진입한 후에도 번번히 승진 기회를 놓쳐 한때 「관운이 다한 것 아니냐」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승진대열에 오르면서 대기만성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앞서 요직을 거쳤던 李 전수석은 PCS사업자 선정의혹 배후로 지목돼 현재 해외도피중인 상태이며, 韓 전수석은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암중모색의 길을 걷고 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세사람은 공교롭게도 고향이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CK(전남·광주)로 각각 다르다. 李전수석이 경북 성주출신이며 韓전수석은 경남 김해, 李수석은 전남 목포다. 출신 고등학교는 李전수석이 서울 경복고, 韓전수석은 부산 경남고, 李수석은 광주제일고.
5공 이후 권력의 핵이 TK- PK - CK 순으로 이어져온만큼 관료로서 이들의 전성기도 그 선후를 달리한다.
李 전수석이 TK정권에서 발탁돼 PK 시절 경제팀 최고의 실세자리에 올랐다면 韓 전수석은 PK정권 하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李수석은 이들보다 한발 늦게 PK 정권에서 부각돼 김대중(金大中)정부 들어 실세로서 입지를 굳힌 케이스.
재경부의 한 관리는 『개성이 강하고 다혈질적인 李전수석과 韓전수석이 상대적으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성격이 온화한 李수석보다 한발 앞서 출세가도를 달린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같은 요인을 반대로 정점에서 빨리 꺾이는 악재로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TK인 李전수석은 5공 시절인 지난 84년 경제기획원 대외협력계획과장을 끝으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돼 8년간 근무한 뒤 노태우(盧泰愚)정부 말기인 92년4월 기획원 예산실장으로 전격 기용됐다. 기획원에서 국장을 안 거치고 바로 1급으로 승진한 것은 李전수석이 처음.
李전수석은 이후 김영삼(金泳三)정부들어서도 농림수산부, 재정경제원 차관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관료로서 그의 이후 행보는 순탄치 못하다. 한보그룹 대출비리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뤘으며, 정통부장관 시절 PCS사업 인허가비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고국을 등지고 해외유랑하는 비운을 맞고 있다.
PK인 韓 전수석은 경제기획원 예산심의관, 정책조정국장, 경제기획국장등 요직을 두루 섭렵하면서 대우조선 합리화, 한국중공업 민영화, 토지공개념 도입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입안했다. 90년 민자당 전문위원 시절 민자당총재 경제특보역을 지내면서 고교선배인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가까워졌고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공정거래위원장(차관급)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뒤 기획원차관, 청와대경제수석으로 승진가도를 달렸다. 韓 수석은 삼성자동차 공장이 입주한 부산 신호공단이 지역구여서 국민정부들어 재벌그룹간 빅딜이 진행되면서 심기가 편한 입장이 못 된다.
CK 출신인 李수석은 두사람에 비해 승진이 다소 늦은 편. 92년 국무총리 2행정조정관(1급)으로 옮기기 전까지 22년간 줄곧 기획원에서 근무한 기획통으로 종합기획과장, 정책조정국장, 경제기획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95년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입각해 97년 3월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8월 노동부장관으로 영전했으며,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에 발탁돼 李전수석과 韓전수석에 이어 경제정책을 총괄조정하는 대임을 맡았다. 그러나 李수석은 기획원 과장시절 차관보로 모시던 진념(陳稔) 기획예산처장관, 대학동기이자 행시 선배인 강봉균(康奉均) 재경부장관과 같이 일을 해야할 처지가 돼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차질없이 받들면서 얼마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한편 이번 개각에서 재경부장관을 맡은 강봉균(康奉均) 전 경제수석도 행시 기수(6회)는 빠르지만 이들 세 사람과 서울상대 64학번 동기로 같은 대학의 같은 학번이 경제수석 4명을 연이어 배출한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 이종석 기자 JS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