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대기업 오너 범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 회장과 SK 측은 계속 무죄를 입증해나가겠다는 생각이어서 앞으로 법정공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지난 2008년 11월 최 회장이 창업투자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김준홍 대표와 공모해 SK텔레콤과 SK C&C의 펀드출자용 자금 465억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열사 차원에서 별다른 내부 검토나 협상 없이 펀드 결성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며 "투자금 전용 과정이 최 회장의 개인재산 관리조직인 SK그룹 관재팀 주도하에 추진된 객관적 정황이 확인됐다"며 최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이어 "유출된 자금이 종국적으로 최 회장 개인자금으로 변제됐다"며 "자금의 실질적 사용 주체는 최 회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회장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계열사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 지급했다가 돌려받는 방식으로 139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가 일부 위법하게 수집된 점, 최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직접 지시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최 회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아 함께 기소된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는 판단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 과정에서 최 회장의 행위가 기업사유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범행의 수단으로 삼은 최 회장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렸고 국민이 받은 실망은 심대하다"고 밝혔다.
또 "SK그룹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 회장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 등을 모두 고려해도 실형이 불가피하다"며 "최 회장은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법원의 판결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선고 직후 마지막으로 발언 기회를 얻은 최 회장은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 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이 일(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SK 측도 "무죄 입증을 위해 성심껏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 변호인과 협의를 거쳐 항소 등 법적 절차를 밟아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