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은 다섯 나라가 바로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이다. 이들 국가의 알파벳 첫 글자를 나열하면 'PIIGS'가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들 국가는 모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본으로 적자를 메웠다. 특히 그리스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해외 자본을 끌어들였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부동산 경기의 활황과 연결해 은행을 중심으로 엄청난 해외 자본을 유입했다. 이태리와 아일랜드는 경상수지 적자 폭이 작지만 정부 부채 비율이 매우 높아서 문제가 됐다. 결국 위기 상황이 도래하면서 해외 자본의 유입 중단과 대량 유출, 즉 '서든스톱' 현상이 발생했고 이들 국가의 경제는 엉망이 됐다.
이들 국가가 힘들어지면서 유로존 전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재정위기가 엄습했다. 알파벳 첫자의 모음인 PIIGS가 '돼지'라는 단어의 복수형인 pigs와 매우 유사하다 보니 조롱 섞인 평가가 여러 군데에서 나왔다. 그러자 이들 국가는 다섯 글자의 배열을 바꾸어 'GIPSI'라고 불러달라는 요구 아닌 요구를 하기도 했다. '돼지'보다는 '집시'가 그나마 듣기가 나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단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이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수그러드는 듯 보일 때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이코노미스트'지는 커버스토리 기사에 '프랑스:유럽심장부의 시한폭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와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프랑스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는 네덜란드의 주택가격 버블과 부채 문제가 부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론은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의 영어표현인 홀란드(Holland) 및 계속 문제가 되는 스페인과 이태리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FISH'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물론 FISH 국가들의 상황은 개선되고 있지만 한때 새로운 불안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됐었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가능성이 이슈로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신흥국 중 자본 유출로 인한 부작용이 클 가능성이 높은 5개 국가가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인도ㆍ인도네시아ㆍ브라질ㆍ남아공ㆍ터키가 이 나라들인데 이들 국가의 알파벳은 단어로 만들기가 어렵다 보니 '취약하다'는 뜻의 영어단어인 fragile의 첫 글자 F를 따서 'F-5'라는 단어가 제시되기 시작했다.
PIIGS에 FISH를 거쳐 F-5까지 나오는 모습을 보면 세계 경제가 아직도 많은 고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불안함이 항상 밑바닥에 깔려 있다 보니 일부 국가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을 한 그룹으로 묶고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자꾸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로 분류되면서 오히려 자본이 유입되고 원화가치가 상승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마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이에 만족하기보다는 잠재적 위험 요소에 대한 평가를 지속하면서 미리미리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현명한 접근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