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1~2년이 아니라 적어도 5년, 10년 뒤를 염두에 두고 사업계획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정치권과 정부가 기업과 기업인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우고 기업정책마저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는 당장 올해 사업 및 투자전략을 확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기업이 사업 및 투자계획을 세우는 데 정부정책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실제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기업정책은 일관성 없이 당시 사회 분위기나 경제상황에 따라 춤을 췄다. 이렇게 정부의 기업정책이 갑작스레 방향을 바꾸다 보니 기존에 기업들이 세웠던 계획들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역대 정부의 기업정책은 하나같이 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여론을 의식해 기업활동을 옥죄는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업이 10년, 더 나아가 10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전략을 짠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과 기업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나라가 돼야 100년, 200년을 지속성장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권 따라 바뀌는 기업정책…백년대계 꿈도 못 꿔=우리나라의 기업정책은 크게 4~5년을 주기로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4~5년마다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 결과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춰 기업정책도 변하기 때문이다. 기업정책이 철저하게 정치적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인 셈이다. 심지어 같은 정권 아래서도 기업정책이 원칙 없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재계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집권 후반기 '공정사회'를 화두로 들고 나오면서부터 기업정책은 '친기업'에서 '반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출범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박근혜 정부 역시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하고 대기업에 대한 전방위 사정을 실시하는 한편 기업에 투자를 독려하는 이중적인 태도로 기업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4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것과 달리 국세청과 검찰은 세무조사와 총수 구속 등으로 기업의 목을 죄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정책이 변하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는 정책 변경의 폭이 너무 심하다는 게 문제"라며 "특히 잇단 선거를 거치면서 내성이 생긴 유권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반기업정책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100년 기업의 토대를 닦으려면 정치와 경제 사이에 담을 쌓고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적인 반기업정서도 지속성장에 걸림돌=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는 그 뿌리가 깊다. 지난 1980년대 후반 정치민주화 요구와 함께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불만이 증폭됐으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기업이 국가환란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국민들의 반기업정서는 극에 달했다. 정치권이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다수인 서민의 편에 서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려는 목적 아래 경제민주화를 선거 화두로 들고 나온 탓이다.
이 같은 반기업정서는 기업들이 100년 기업으로 커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반기업정서가 사회에 만연하다면 기업이 기본적으로 발전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된다"면서 "경제민주화에 따른 반기업정서가 지속될 경우 우리 기업들의 30년 압축성장이 30년 압축퇴보로 반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친기업정책ㆍ정서로 기업 지속성장 이끌어야=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부분 중 상당 부분은 심리다. 기업을 적대시하고 기업인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환경 속에서는 기업이 성장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선순환구조가 정착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100년 기업을 육성해야 할 기업인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권과 국민들이 기업을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악을 유발하는 주체로 바라볼 경우 기업인들의 사기 저하가 불가피하고 이는 곧 신규투자와 신사업 발굴 등에 악영향을 끼쳐 기업 경쟁력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의 견인차로서 기업의 역할을 인정하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북돋워 영속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부정책과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 소장은 "정치권이 앞장서 반기업정서를 조장하고 있지만 결국 국민들이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않고 정치권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반기업적인 정책과 정서를 해소할 수 있다"면서 "특히 지금같이 경기가 어려운 때일수록 기업에 힘을 주는 정책과 분위기를 통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