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엔지니어의 힘


미국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누구나 아는 혁신기업인 구글과 애플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엔지니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엔지니어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연봉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국내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들의 위상은 높지 않다.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유수의 기업을 대표할 만한 '스타 엔지니어'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껏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도 삼성맨이나 현대 직원으로서의 자부심은 있을지언정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은 희미해 보였다. 예를 들어 이들에게 기술적인 트렌드나 방향을 물으면 엔지니어로서의 의견보다는 회사의 공식적인 방침을 듣게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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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국내 대기업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엔지니어로서 살아남기 더더욱 어려워지는 문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눈에 띄는 백발의 베테랑 엔지니어는 국내 대기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고위직일수록 더 넓은 관점, 특히 경영자로서의 마인드를 갖춰야 하겠지만 한국에서는 엔지니어로서의 정체성을 버려야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가능한 분위기다.

뛰어난 엔지니어가 빚어낸 성과는 단순히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해당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자동차를 직접 만들었던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 칼 벤츠 등의 창업자들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슈퍼 스포츠카 'GT-R'를 개발한 닛산의 미즈노 가즈토시 차량·제품기술 총괄이나 40여년간 BMW의 엔진 개발을 맡아온 폴 로셰 등은 각 기업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이름들이다.

엔지니어로서의 고집보다 '윗분'의 의견을 중시해야 하는 기업에서는 이런 스타 엔지니어가 나올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경쟁자를 따라잡기보다 차별화된 기술력과 혁신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기를 살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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