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거짓말은 어느 나라에서나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듯하다. 미국 클린턴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인 「지퍼게이트」가 확산되던 시점에는 미국 여론이 클린턴의 거짓말을 문제삼았지만 이후 흐지부지되는 모습이다.하지만 고위관료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대부분 철저하게 따지고 든다. 미국의 경우 대법관을 임명하기 위해 후보자의 판결문 귀절 하나까지 파헤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고위관료의 도덕성에 대해 유독 관대한 실정이다.
최근 문제가 된 정덕구(鄭德龜)재정경제부차관의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사건을 보자.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67~88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3차시험까지 합격해야 받을 수 있었다. 1, 2차 시험은 곧바로 봐야하지만 3차시험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치러도 됐다. 당시 3차시험 과목은 재무관리와 세법. 문제는 89년부터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제도가 바뀌어 재무관리와 세법이 2차시험 과목으로 편입됐다. 이바람에 67~88년 1, 2차시험 합격자는 3차시험을 볼 방법이 없게 돼 억울하게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딸 방법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처럼 억울한 케이스를 구제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3월 공인회계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67~88년 1, 2차시험 합격자에 대해 과목당 100시간씩 연수를 받으면 3차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간주, 자격증을 주기로 한 것이다.
공인회계사회는 해당자들에게 지난 4~5월 실무연수를 받도록 했고 이를 통해 69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해당자들은 대부분 전·현직 고위공무원, 대학교수, 기업대표 등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시험을 보지않고 연수만으로 자격증을 주는 게 편법 또는 특혜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의 정황을 감안하면 부득이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실무연수조차 제대로 받지않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鄭차관이 대상으로 지목된 것. 鄭차관은 세무사자격증을 갖고있기 때문에 재무관리 관련 100시간만 4~5월 두달동안 회계연수원과 안건회계법인에서 각각 50시간씩 연수받아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4~5월은 외환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40억달러의 외평채 발행을 위해 재경부를 비롯한 온 경제부처가 동분서주했던 시점이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거의 모든 재경부 직원들이 출근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100시간(주말에만 하루 8시간씩 잡아도 2개월이상 걸린다)을 꼬박 연수받았다는 鄭차관의 해명이니, 『그렇다면 슈퍼맨』이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다.
鄭차관이 공인회계사회를 직접 감독하는 재경부의 차관이란 점이 유달리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鄭차관이 실제 연수를 받았다면 억울할테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연유에선지 특혜가 주어졌다고 봐야 한다. 물론 혹자는 鄭차관이 사소한 일로 억울한 음해를 당하고 있다고도 설명한다.
하지만 고위관료의 두리뭉실한 도덕의식이 IMF사태까지 불러온 요인중 하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鄭차관의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 경위는 철저히 검증되어야 할 일이다. 고위관료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식의 도덕의식을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