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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쳤어? 죽고 싶어?" 지난해 11월 민간 간호사 홍나연(30)씨가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에 지원했다고 밝히자 남자친구는 이렇게 소리쳤다.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차마 내 자식은 못 보내겠다." 군의관 이태헌(34) 해군 대위의 부모님은 그가 에볼라 대응을 위해 서아프리카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한달음에 서울로 올라와 그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친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에라리온으로 날아가 의료 구호활동을 펼치던 '에볼라 대응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 의료대' 1진이 귀국 후 3주간 자발적 격리조치를 마치고 지난 15일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13일 출국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수도인 프리타운 인근 가더리치에 있는 에볼라 치료소(ETC)에서 약 한 달간 활동한 뒤 지난달 26일 귀국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시에라리온은 18일 기준 에볼라 감염자 수 1만1,103명, 사망자 수 3,408명에 달하는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격리조치 종료 직후 인천공항 정부합동청사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7명의 대원들은 "에볼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구호활동 기간에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죽어가는 환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들이 사망하더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낯선 땅에서 검은 피부의 환자들이 빠르게 사망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치사율이 높은 질병과 맞서 싸운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1진 의료팀장을 맡았던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센터장은 "동료가 사고로 같이 일하지 못하고 독일로 후송되는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긴급구호대 1진 대원 중 민간 의사 출신인 최모씨는 지난해 12월29일 환자를 채혈했던 주삿바늘에 찔려 에볼라 감염이 우려돼 독일로 후송됐다가 감염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먼저 귀국했다.
신체적·물리적 어려움도 있었다. 환자 수에 비해 의료진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것. WHO 가이드라인은 에볼라 환자 1명당 의료진 2.5~5명을 권고했지만 현지 치료센터에는 환자 34명에 국제 의료진은 25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3교대로 근무했지만 시에라리온에서는 13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원들은 한결같이 "생존한 환자들이 퇴원할 때 이런 어려움을 모두 이겨낼 정도로 보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홍 간호사는 "부모님과 형제를 에볼라로 잃고 홀로 살아남은 환자가 ETC의 경비원으로 고용됐다"면서 "그는 슬프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면서 자신을 고용해줘서 고맙고 한국 의료진이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자신들을 걱정하고 지지해 준 한국의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오대근(39) 육군 중령(군의관)은 "시에라리온에서 평소 감정표현을 잘 안 하시던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 아들아'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 뭉클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귀국 후 격리기간에 가족들이 면회를 왔는데 남편과 아버지로서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아마 1년 이상은 부인이 바가지 긁지는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우리 정부가 이번에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를 파견한 경험을 축적해 이를 앞으로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 센터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해외에서 치명적 급성 전염병이 발생할 때 군과 민간 의료진을 대규모로 보내 조기에 여러 연구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