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와~ 공공시설이 예뻐졌구나

서울역 천장 칙칙한 회색서 파란색으로<br>인천공항 문화재 전시 박물관으로<br>생태통로엔 풀·나무모양 조명 장식 등 보기 좋고 이용 편리한 디자인 잇달아

서울역에 문을 연 중소기업 명품마루

인천공항 박물관

"원래는 회색이었죠. 때가 잘 안타니까요. 하지만 역사를 오가는 많은 분들께 상쾌한 기분을 선사해드리려면 회색보다는 파란색이 낫겠다는 생각에 천장 색깔을 바꿔봤습니다."

서울역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번 바라보자. 시각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뭔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회색이었던 기둥들이 얼마 전 파란색으로 일제히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서울역을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O트레인과 V트레인을 디자인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펠릭스 부코브자씨의 자문을 받아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디자인 개선을 한 결과다.

회색 콘크리트와 딱딱한 직선으로 대표되던 공공건물들이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기차역이나 공항ㆍ도로 등을 중심으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곳은 디자인 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코레일이다. 한국의 사계를 담은 중부내륙순환열차 O트레인과 아기 호랑이를 그려 넣은 백두대간관광열차 V트레인은 산업통상자원부 2013우수디자인으로 선정됐다.

지난 5월 서울역에 문을 연 중소기업 명품마루에도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다. 중소기업 명품마루가 들어선 서울역 입구는 역내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으로 막혀 있으면 시야가 답답해 보이기 쉽다. 결론은 벽을 통유리로 만들어 답답함을 없애자는 것. 유리 벽면에 진열장을 붙여 안팎에서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코레일은 디자인 업그레이드를 위해 역사 분위기나 매장, 광고와 열차까지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디자인심의위원회를 거쳐 처리하고 있다. 위원회에는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자문위원장을 지낸 오인욱 가천대 명예교수와 김현중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교수 등 전문가 42명이 속해 있으며 주 1회 디자인 관련 사안을 점검한다.


입국장과 출국장ㆍ면세구역 등 넓은 면적에 다양한 기능이 모여 있어 자칫 혼란스러워 보이기 쉬운 인천국제공항도 디자인 일관성을 위해 공항 전체의 콘셉트를 결정하는 문화예술자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신달자 시인, 한국화가 이종상 교수 등 기라성 같은 문화계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현재는 12월 새로운 자문위원회 출범을 목표로 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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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장소답게 인천공항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개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 공항을 꾸몄다. 탑승동에 있는 박물관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문을 받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여객터미널 입국장에 55인치 발광다이오드(LED) 텔레비전 총 116대로 미디어월을 만들어 국립공원의 모습이나 의궤도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한 관계자는 "올해 말에는 미디어월에 한류 확산의 대표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 소속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상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스팔트와 철제 구조물로 둘러싸인 도로에도 디자인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달 28일 고속도로 공공디자인 공모전 시상식을 열었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동물들이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콘크리트로 만든 생태 통로에 풀과 나무, 동물 모양의 조명을 장식해 운전자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한 김승호ㆍ김윤석씨의 '자연그대로(路)'가 대상을 받았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설민규ㆍ장준영ㆍ신현상씨의 '사계그늘'은 낙석방지책에 나무 잎사귀를 그려 넣어 햇빛이 비치면 자연스럽게 도로에 마치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뙤약볕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도로를 달리더라도 항상 나무그늘 아래 있는 듯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용구 도로공사 기술심사처 설계VE팀장은 "과거에는 도로가 오로지 기능 위주의 시설이었다면 이제는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미적인 부분도 중요해졌다"며 "앞으로 당선작들을 실제 도로에 설치해 이용자들이 도로에서도 디자인을 즐길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들어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는 공공시설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좀 더 확대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코레일의 한 디자인업무 담당자는 "디자인 관련 계약을 할 때 계약금을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 어디에도 기준이 없어 모든 계약을 절차와 근거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정부기관으로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디자인위원회 위원장과 코레일 디자인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는 "서양에서는 공공 부문에서 적극적으로 디자인 개선을 해왔지만 우리나라는 고품질은커녕 공공디자인 도입 자체도 미미한 수준"이라며 "특히 법과 제도가 미비해 기관장 철학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공공디자인은 복지의 일종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보기 좋고 편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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