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금시장 “공황” 우려/한보 마침내 부도… 경제 파장은

◎적자경제에 재벌도산… “설상가상”/1분기 성장 마이너스 가능성까지국내 14위의 재벌인 한보그룹이 공중분해의 운명을 맞게 됐다. 이에따라 총 5조7천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 처리를 둘러싸고 은행 종금 리스 등 채권 금융기관과 한보그룹 24개 계열사, 수천개로 추산되는 하청계열업체 등은 심각한 도산위기에 몰리게 됐다. 또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공황에 가까운 연쇄파장이 불가피해졌다. 한보그룹의 부도사태가 미칠 충격은 지금까지 정부수립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 가뜩이나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총파업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 경제는 설상가상의 고통에 연거푸 노출돼 1·4분기중 마이너스 성장의 가능성까지 전망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자본·외환시장이 대부분 개방된 상태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첫해에 엄습한 재벌그룹 도산사태가 몰고올 국제경제 무대의 파급영향도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또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 불거진 이번 사태는 정경유착 의혹을 둘러싼 정치공방과 국론분열 등 걷잡기 어려운 소용돌이를 몰고올 전망이다. 이번 부도는 지난 80년대 중반 국제그룹 해체와 비교해도 사태의 전개추이나 수습방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 국제그룹은 재계순위 8위로 한보에 비해 상대적인 재벌서열은 앞섰으나 절대적인 자산규모에서 1조원안팎에 그쳐 한보에 비해 규모가 작다. 또 국제그룹의 경우 정치적 판단에 따른 해체 결정과 일련의 「합리화」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정부가 계열사별로 인수할 제3자를 찾아주는 등 관련당사자들이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충격이었다. 반면 이번 부도는 당국의 수습방안이 계획대로 진행되던 중 정태수 총회장이 갑자기 이를 수용거부함으로써 채권금융단이 전격 부도처리키로 결정, 사태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선회한데서 빚어졌다. 1조원에 가까운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주거래은행이 정부의 수습지침을 일단 수용키로 했다가 확대채권단 회의를 갑자기 무산시킨 것은 과연 어떤 배경과 정책결정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인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부도처리및 법정관리 추진이라는 초강수로 선회한 원인이 경영권 포기를 거부하는 한보 정 총회장에 계속 끌려다니다간 사태를 조기 수습할 수 없다는 결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같은 추론은 지금까지 정상적인 금융원리를 무시하고 은행들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한보에 자금지원을 계속했던 「정치적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떠도는 소문처럼 정총회장의 외통수 고집에 고위층이 분노, 원칙에 따른 처분을 강행토록 지시했다면 이같은 대응이야말로 한보부도가 몰고올 사회경제적 충격을 전혀 고려치 않은 즉흥적 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사실 「은행관리 및 위탁경영」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당초 수습방안도 한보를 살리려는 「구색맞추기」에 다름없었다. 사태해결의 핵심인 한보의 경영권문제(3자인수)를 분명히 매듭짓지 못한 채 자금지원을 계속할 대외명분 찾기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겉으론 한보처리가 채권은행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발뺌했으나 실제론 청와대와 재경원이 긴밀한 협의끝에 세부처리 방안을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한보가 회생할 가능성이 희박해 부실만 키우는 결과인데다 정치적 배려에 따른 지원이 아니냐는 여론의 비난까지 각오한 파격적인 수습책이었다. 그런데 정 총회장이 당초 약속과 달리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을 완강히 거부, 당국의 수습방안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면서 채권단은 한보철강을 전격 부도처리한 것이다. 한보그룹의 부도사태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자산 5조원을 웃도는 재벌그룹의 존망이 이토록 두서없이 결정된 데 대해 무엇보다 경악하고 있다.<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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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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