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소유·경영 분리조치가 곧 가시화할 전망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정부·재계 간담회에서 『주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경영능력이나 적성이 없는 사람이 경영을 맡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고 반문하면서 『이점에 대해 상당한 반성과 시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5대그룹처럼 족벌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능력에 관계없이 경영권을 세습하는 폐습을 없애기 위해 기업운영을 이사회중심으로 바꾸는 한편 내부지원 차단장치를 마련중』이라고 언급,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정부는 金대통령과 李위원장의 발언직후 바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의 대강 을 밝혔다. 내년부터 현행 이사회와는 별도로 감사위원회 인사위원회 보수위원회 등을 설치, 회사의 중요한 결정이 대주주의 독단이나 전횡에 의해 처리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아무튼 이같은 정부측 움직임에 대해 재벌은 불만이 적지 않다. 『무슨 기준으로 경영능력을 계량화 하나』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은 시장논리인데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등의 제도적인 의문에서 『전문경영인은 대규모 투자결정 등에서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 자칫 실기(失機)할 우려가 높다』는 현실적인 걱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같은 불만, 의문은 타당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상되는 현실적 어려움 보다는 재벌의 소유구조가 바뀌어야 한국경제, 더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결코 「재벌 때리기」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경제가 이만한 볼륨으로 성장하기까지 기여한 재벌의 순기능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제 시대의 요구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보잉, GE, GM, 다이믈러 크라이슬러, 소니, 미쓰비시 등…. 세계의 소위 잘나가는 기업가운데 소유와 경영이 완벽하게 분리되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물론 포드자동차처럼 창업주나 대주주의 혈족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결실이지 우리처럼 「주어진」것은 아니기 때문에 얘기가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재벌 계열사들은 대개 공개기업이다. 「기업공개」는 곧 그 기업이 더 이상 창업주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게다가 주식의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창업주나 대주주의 지분이랬자 고작 10%미만에 불과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자명한 사실이 땅속에 묻혀 있었다. 이는 「IMF시대」로 일컬어지는 작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재벌의 무분별한 외형부풀리기와 무관하지 않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재벌개혁이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 더욱이 세습은 근대 이전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혈연을 넘어 이웃을 찾고, 지연과 학맥을 넘어 민족을 발견해야, 기업이 살고 국가가 큰다. 21C가 눈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