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의료개혁 첫 걸음 '비급여 개선'

보험 적용 안되는 비급여 가격 등 병원서 일방결정<br>환자에 부담 넘기기 심각 건보에 편입 양성화 해야


오랫동안 간염으로 고생하던 친구의 아버님이 간암 의심판정을 받았다. 간염이 간암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치료를 놓친 것이다. 서둘러 서울의 대형병원 유명의사를 수소문해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과 시골을 왕래하던 아버님은 상태가 악화돼 입원을 했다. 두 달간의 입원 끝에 결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맞았다. 1년 반에 걸친 치료와 임종의 과정에서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과 가족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한 질환으로 임종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누구나 겪게 된다.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경제적 비용부담도 크다. 큰 병원의 경력 있는 전문의를 선택해서 진료를 받으면 선택진료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의 6인실 입원은 쉽지 않아 상급병실료도 부담해야 한다. 가족이 환자수발에 매달리지 않으면 간병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수많은 검사가 되풀이되고 여러 가지 주사기를 꽂고 살아야 한다. 수시로 청구되는 복잡한 계산서는 알기 어렵고 부담해야 할 총액만 눈에 들어온다. 생사를 가르는 긴장과 공포 앞에서 그저 의사의 처분만 따를 수밖에 없다.


사실 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암환자의 본인부담은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부담은 이보다 훨씬 많다. 3대 비급여라 불리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다. 이 밖에 보험에서 제외되는 각종 검사와 약제, 치료소모품들을 환자가 다 부담하면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런 비보험 항목들의 가격을 환자들은 거의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얼마나 제공되는지는 전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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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편에 서서 최선의 진료를 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기대는 병원경영의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십상이다. 이것이 비급여의 문제를 의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는 병원을 상대로 의료서비스의 가격이나 양과 질을 거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이라는 제3자가 환자를 대신해서 가격을 협상하고 진료의 양과 질의 적정성을 심사한다.

그러나 비급여는 건강보험 밖에 있기 때문에 병원이 일방적으로 가격과 양과 질을 정하게 된다. 병원의 경영사정에 따라 가능한 한 환자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떠넘기기에도 한계가 있으니 장례식장 운영과 같은 비의료적 수익에 눈을 돌리게 된다. 비급여는 환자를 힘들게 하지만 의사나 병원도 힘들게 한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러한 비급여의 문제는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 중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안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총 의료비 가운데 환자가 보험급여로 보장받는 비중은 63%이다. 나머지 37% 중에서 본인 법정부담이 20%이고 비급여 부담이 17%이다. 그런데 비급여 부담은 2006년 4조5,000억원에서 2011년 9조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13%에서 17%로 증가했다. 건강보험제도 밖의 비급여는 갈수록 늘어나고 음성화되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보험급여의 보장을 늘려도 병원이 비급여를 계속 늘리면 환자의 부담은 되레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비급여를 제도 속으로 편입해 양성화해야 한다. 건강보험제도 밖이 아닌 안에서 환자에 대한 보장성과 병원경영을 슬기롭게 조화시키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4대 중증질환의 보장은 중요한 국정과제이기는 하나 환자에게 절박한 비급여의 부담을 해결하는 것 또한 국정의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비정상적인 비급여를 정상적인 급여로 전환하는 구조개혁이 새로운 의료개혁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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