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햄버거 먹고 캐릭터 모으자" 직장인도 줄서기

세대 벽 허물어버린 맥도날드 해피밀 문화마케팅 대명사


#. 회사원 이승석(38)씨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어린이용 메뉴인 ‘해피밀 세트’를 주문한다. 평소 햄버거를 즐겨 먹지 않는 이씨가 해피밀 세트를 구입하는 이유는 함께 제공되는 피규어 장난감 때문이다. 3년 전부터 하나둘씩 사모은 해피밀 피규어는 어느새 20종을 넘어섰다. 이씨는 “아이가 둘이 있지만 해피밀 피규어는 오로지 나를 위한 취미가 됐다”며 “매번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수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 지난달 23일 맥도날드 서울시청점. 평소에도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이지만 점심시간이 되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직장인 300여명이 너도나도 몰려든 것. 30여분을 기다린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해피밀 미니언즈 세트’를 주문했다. 하지만 판매 첫날인 이날 오전 물량 대부분이 동나는 바람에 상당수는 발길을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맥도날드의 어린이 메뉴인 ‘해피밀 세트’가 세대를 초월한 문화 마케팅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해피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어느 매장을 방문해야 빨리 살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넘쳐나고 일부는 웃돈까지 주며 피규어를 구입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감성을 지니는 키덜트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해피밀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일종의 ‘문화 상품’이 됐다는 평이다. 3,500원짜리 햄버거 세트에 달려나오는 단순한 피규어 장난감이 그 이상의 매력과 가치를 고객에게 선사한다는 의미다.

해피밀 세트는 원래 부모와 함께 맥도날드 매장을 찾은 어린이를 겨냥한 메뉴다. 햄버거와 디저트, 음료, 장난감으로 구성되며 전용 박스인 ‘레드박스’에 담아 판다. 여느 햄버거 세트와 다를 바 없는 조합이지만 별도로 증정하는 피규어 장난감이 해피밀 세트의 판매를 견인하는 주인공이다.

해피밀은 지난 1979년 미국 맥도날드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광고담당자였던 딕 브람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부모가 햄버거를 먹는 동안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작은 장난감을 하나씩 주자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를 데리고 맥도날드를 찾는 부모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가족이 함께 즐기는 패스트푸드 전문점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해피밀은 이듬해인 1980년 호주와 홍콩에 출시됐고 브라질, 뉴질랜드 등으로 확대됐다. 국내에도 맥도날드가 진출한 1988년부터 해피밀이 등장했고 1995년에는 유럽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 정식 메뉴로 이름을 올렸다. 초기에 서커스 마차 모양이었던 전용박스도 시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면서 최근에는 세련미를 더한 ‘레드박스’로 업그레이드됐다.


해피밀 세트의 장난감은 맥도날드 본사가 치밀하게 계획해 선정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기 캐릭터가 주로 쓰인다. 통상 45일 주기로 해피밀 신제품을 출시하기 때문에 연간 7~8종의 장난감이 탄생한다. 매년 맥도날드 본사가 미리 확보한 수십종의 캐릭터 중 3~4종을 기본으로 정하면 각국 현지법인이 해당 국가의 시장 상황을 고려해 나머지를 추가로 선택하는 식이다. 캐릭터산업이 발달한 일본은 미리 해피밀 신제품을 출시해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 기능도 종종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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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밀 장난감은 1979년에 첫선을 보였지만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디즈니의 캐릭터를 접목한 1987년부터다. ‘미키 마우스’, ‘신데렐라’, ‘알라딘’, ‘니모’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요 캐릭터가 해피밀 장난감으로 탄생했고 최근에는 ‘트랜스포머’, ‘헬로키티’, ‘레고’, ‘텔레토비’ 등도 주연 배우로 출시됐다.

국내에서는 ‘스머프’, ‘천재 강아지 미스터 피바디’, ‘드래곤 길들이기’, ‘마다가스카의 펭귄’ 등이 해피밀 장난감으로 등장했고 2013년에는 국산 토종 캐릭터인 ‘유후와 친구들’이 글로벌 해피밀 캐릭터로 뽑혀 전 세계 40개국 6,000여개 매장에 얼굴을 알렸다.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끌던 해피밀 세트가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지난해 5월 ‘해피밀 슈퍼마리오 세트’를 출시하면서다. 일본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장난감을 넣은 이 세트는 출시 3일 만에 매진됐다.. 주요 맥도날드 매장에는 제품 구입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일부 고객은 사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해피밀 대란’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때다.

해피밀 세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지난달 23일 출시한 ‘해피밀 미니언즈 세트’로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개봉에 앞서 출시한 이 세트는 첫날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왔다. 매장당 100개 한정판으로 선보였는데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됐다.

기본적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제품인 만큼 안전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맥도날드는 캐릭터가 정해지면 정식 계약을 체결한 제조업체를 통해 해피밀 장난감을 생산한다. 모든 제품은 미국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로부터 안전성을 부여받은 원료를 사용하며 맥도날드 자체적으로도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다.

전 세계적으로 해피밀 세트 열풍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 해피밀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발품파는 수고 덕에 희소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중 음식인 햄버거에 누구나 탐내는 장난감이라는 부가가치를 더한 전략이 고객의 소비심리를 꾸준하게 자극한다는 얘기다. 해피밀 장난감 자체로 얻는 만족감 외에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통해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크다는 점에서 경쟁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인과 대학생이 주도하는 ‘해피밀 대란’은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어른들이 한없이 자유롭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투영된 현상”이라며 “현실에서는 비록 팍팍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를 통해 심리적인 만족과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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