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태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열흘새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고객예탁금도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동양사태가 증권업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투자상품 기피현상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증권사 CMA 잔액은 지난달 17일 43조3,048억원에서 지난 1일 40조9,802억원으로 줄었다. 열흘 남짓한 사이에 2조3,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이탈된 것이다.
동양그룹 사태가 터지고 시장의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동양증권을 중심으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간 것으로 풀이된다. 동양증권이 업계 1위의 CMA 점유율을 차지했던 만큼 동양증권 CMA에서 자금의 상당 부분이 빠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사태가 터지기 전만해도 동양증권이 판매한 투자자예탁금, 환매조건부채권(RP), CMA, 신탁계좌,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등 금융투자상품 수탁액은 16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8조~9조원의 자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가면서 반토막이 난 상태다.
지난달 23일 동양증권에서 1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을 시작으로 24일 인출 규모는 2조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진정세를 보이며 27일에는 인출자금이 3,000억원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동양ㆍ동양레저ㆍ동양인터내셔널이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지난달 30일 인출 자금은 다시 1조원으로 늘었다. 급기야 지난 1일 동양시멘트마저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가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더욱 고조돼 대규모 인출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 두는 고객예탁금도 급감하며 1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한국증권금융에 예치된 고객예탁금은 16조2,652억원으로 지난해 7월30일(16조379억원) 이후 가장 적었다. 특히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16일 19조4,404억원에서 30일 16조원대로 단숨에 3조1,752억원이 줄었다. 이처럼 단기간에 3조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간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결국 동양그룹 사태로 위험자산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질 수 있고 불완전 판매가 확인될 경우 증권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동양그룹 사태 이후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돼 CMA 등 단기 자금이 은행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증권업계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조기에 수습하지 않으면 자산관리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