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첫눈-홍병의 시슬리코리아 대표


올해도 역시 가을 단풍을 눈에 다 담기도 전에 어김없이 첫눈이 내렸다. 잠깐이었지만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봤다. 밤에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다웠다.

추운 겨울의 눈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기 마음속에 함께 있는 이의 체온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게 하는지, 차가운 눈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주는지, 발끝에 들려오는 뽀드득 눈 소리가 우리를 어린 시절로 얼마나 빠르게 데려다주는지. 눈은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나오는 추억이기도 하다.

첫눈이 내리면 왠지 누군가 만나고 싶어진다. 혹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 같은 생각도 해본다. 왜 눈이 오면 마음이 설렐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지금껏 똑같은 자리에서 첫눈을 맞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우연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영화 속의 첫눈은 언제나 아름다웠다고 기억된다.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첫눈에 얽힌 사연 한두 개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눈이 내리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의 기다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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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마도 내가 첫눈을 기다리는 것은 걸어온 세월만큼 내 인생의 허물과 후회의 흔적을 덮고 다시 시작할 힘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복잡했던 많은 일들의 정리가 필요하기에 쏟아지는 하얀 눈을 기다렸나 보다.

한 해의 끝 무렵, 계절의 변화에서 겪는 한 해가 지나간다는 아쉬움, 그리고 다가올 내일의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이런 첫눈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젊었을 때는 첫눈이 내릴 때면 이렇게 저렇게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싶어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눈이 내리면 만남과 추억 대신, 눈 쌓인 설원으로 스키를 타러 간다. 나이가 들면서 스키에 매료되는 나를 본다. 스키라는 운동 자체보다 스키장에서 만나는 주변 환경이 마음을 움직여서다. 눈 덮인 하얀 산, 차갑지만 얼굴에 닿는 상쾌한 바람, 능선을 타고 흐르는 변화무쌍한 구름,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들의 멋진 자태, 게다가 리프트에서 내려 산 정상에서 보는 하얀 나무들의 무성함은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 산은 한여름의 푸른 숲, 단풍으로 뒤덮인 가을 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눈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시생에게는 진로의 갈림길에서 고뇌함이 있고 전방에서 눈 치우는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생활전선에서 고생하는 모든 이들에게 눈은 고난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조차 첫눈은 희망일 것이라 믿는다.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될 것이고 이 아름다운 눈꽃송이만큼 축복과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첫눈이 겨울 한가운데 울려대는 구세군의 종소리처럼 사람들 마음에 뜨거운 희망의 메시지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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