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다. 보통 부검과정 견학이 가장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사건 슬라이드가 더 참혹한 기억으로 남았다. 일본식 표현으로 사스마와리(경찰 사건기자)가 되면 취재대상이 강력사건이 주류인데, 교육에 들어온 부검의가 물었다. "사형제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는 7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성폭행 당한 후 무참히 손상된 토막사체로 수도권 곳곳에서 시차를 두고 발견된 사건 슬라이드 자료를 틀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이제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의 새파란 눈빛이 기억난다.
이 책 역시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시작된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에 대해 관대했던 우리 사법계에 경종을 울리며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된 두 사건,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김진관 사건이다. 각각 옆집 아저씨와 의붓아버지에 의해 어린 시절 오랜 기간 겪은 성폭행으로 피해자의 삶이 망가지고 결국 가해자의 죽음으로 끝난 케이스다.
현직 경찰관 생활과 경찰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민간 범죄수사분석 전문가(프로파일러)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저자는, 미국 정신의학자 쉔골드의 '영혼 살인'이라는 표현을 인용한다. 유년시절 아동에게 가해진 성학대가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리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 연방교도소 수감 여성 중 53%, 청소년 성매매 여성 중 60% 이상이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다. 또 다중인격장애자 관련 연구에서는 대상자의 98%가 유년시절 피해경험이 있었다.
참혹하고 어이 없기로는 '묻지마 범죄'가 빠지지 않고, 파렴치한 정도로는 모성과 부성을 이용하는 어린이 유괴 범죄가 그렇다. 그 외에도 이 책은 가족간의 살인, 여성 살인사건, 다중인격자ㆍ주한미군에 의한 사건을 묶어서 소개한다. 또 다소 다른 예지만 살인 누명을 쓴 경우와 사기범죄도 다룬다. 개별 사건과 유사한 해외 사례도 소개하고, 당시 수사에서의 특이점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형사 절차를 진행하고 처벌 정도를 결정하는 법조인들이 법전과 판례에 매몰되는 것을 막고, 나아가 피해자의 심경을 배려하는 '피해자적 관점'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이제는 사후 처벌보다는 예방 중심의 형사사법 및 경찰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피해자가 이어지는 삶 속에서 사회로부터 제2, 제3의 상처를 입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다.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