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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차(005380)·SK·롯데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개편 이슈는 올 한 해도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배구조개편 관련주들은 증시 개장 첫 날인 지난 2일 큰 폭으로 상승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삼성SDS는 전거래일 대비 8.35% 급등한 3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으며, 제일모직(028260)도 8.23% 상승한 17만1,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또 현대차그룹 지배구조개편의 핵심 기업인 현대글로비스는 5.83% 상승했으며. SK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SK C&C도 7.96% 급등했다. 유가증권시장 대형주들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지배구조개편 관련주들의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남룡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배구조개편 관련주가 새해 주식 시장 시작과 함께 두드러진 주가 상승을 보였다"며 "이들 기업은 신사업 확장을 통한 가시적인 성과 도출과 분할 및 합병을 통한 추가적인 상승 모멘텀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개편 이슈가 마땅한 호재를 찾기 어려운 한국 증시를 지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이들 그룹주가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배구조개편 이슈가 부각되면서 주가가 상승하면 증시 전체적으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삼성전자(005930), 제일모직, 삼성SDS 등 삼성그룹주(삼성테크윈 제외) 17개의 시가총액은 321조9,259억원에 달한다. 또 현대차,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주 10개의 시총은 111조4,177억원이며, SK그룹주 16개의 시총은 91조5,271억원, 롯데그룹주 8개의 시총은 21조1,019억원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지배구조개편이 예고되어 있는 이들 4개 그룹의 시총 합계는 545조9,727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전체 시총(1,335조3,406억원)의 약 40%를 차지한다.
특히 지난해 지배구조개편 관련주들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보였다. 삼성SDS 상장을 전후로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거나, SK그룹 내 삼성SDS와 동종기업인 SK C&C의 주가가 오르는 식이다. 올해도 어느 한 그룹의 지배구조개편에 중요한 변곡점이 생길 때마다 다른 그룹 관련주들도 연쇄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각 그룹의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너 일가가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그룹 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 기업의 지분율을 높이거나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하여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단연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작년부터 지배구조개편 관련 이슈를 주도하며 증시를 뜨겁게 달궜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 이슈는 작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되기 시작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이 합병을 발표한 작년 3월31일 삼성SDI의 주가는 6.62%나 올랐다. 5월에는 삼성SDS, 6월에는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의 상장 계획이 발표됐으며, 11월14일에는 삼성SDS, 12월18일에는 제일모직이 상장을 마무리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개편의 1차적인 밑그림이 그려졌다. 올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을 기업은 제일모직이다.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제일모직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삼성그룹의 제조업부문만 보유하거나 제조업부문과 금융부문을 동시에 지배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증권사 연구원 중 제일모직의 목표주가를 20만원으로 가장 높게 제시한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제일모직의 사업부문 가치만 놓고 보면 목표주가는 12만원 정도가 적당하지만 제일모직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감안하면 8만원 정도의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금지된 지주회사의 제조와 금융 부문 동시 지배가 허용된다면 제일모직의 가치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전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지주회사가 제조와 금융 부문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최근의 글로벌 추세는 금융부문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적용되면서 금융과 제조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지주회사가 금융과 제조를 동시에 보유하는 방안이 곧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이 같은 가정 하에 "제일모직이 지주사로 전환된다면 한 축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업계열사, 다른 축으로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를 지배할 것"이라며 "오너 일가가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지분율을 높이면 삼성계열사는 전사적으로 배당을 높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일모직의 순이익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글로비스가 지배구조개편의 핵심이다. 현대차그룹의 후계 구도는 일찌감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 정해져 있다. 문제는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모비스(012330)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 부회장이 지분 31.88%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를 끌어 올려 현대모비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모비스 지분 0.7%를 들고 있다. 또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8%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지분 4.9%를 소유하는 식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이어져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순환출자, 금융자회사로 복잡한 계열관계가 이어져 있지만 그룹3세가 주력계열사 지분을 지극히 낮게 들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앞으로 그룹3세가 소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의 가치를 높여 현대모비스 등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에서는 SK C&C가 주목 받고 있다. SK그룹의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 일가->SK C&C->SK 지주회사->지주 자회사->지주 손자회사'로, 실질적 지배회사인 SK C&C와 SK지주회사가 옥상옥의 지배구조를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SK C&C와 SK 지주회사의 합병이나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그룹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확보하고, 그룹내 일감 몰아주기 이슈를 해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최 회장의 SK C&C 지분은 32.8%다. SK C&C가 SK와 합병하면 최 회장의 지분은 20% 정도로 줄어든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지배구조개편을 위해 SK C&C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거나, SK C&C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우 1922년생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령으로 그룹 승계 작업이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계열사에 대한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변수다. 실제 롯데쇼핑의 경우 신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 한국롯데 회장의 지분율은 13.5%로 동일하며, 지분 차이는 1주에 불과하다. 롯데제과에 대한 지분율도 신 한국롯데 회장이 5.3%, 신 일본롯데 부회장이 4.0%로 차이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 2013년 신 한국롯데 회장이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케미칼 등 주요 상장사 주식을 7년 만에 사들이자, 경영권 경쟁이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그룹의 경우 식품과 유통 등 51개에 달하는 순환출자고리가 해소되어야 효율적인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며 "한국과 일본의 지역 간 분리는 한국이 일본과 비교해 자산과 매출액이 10배 이상 크지 때문에 가능성이 낮고, 식품, 유통 등 산업군별 분리가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산업군별로 분리되면 순환출자가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며 "현금이 많은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