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충식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8일 사퇴의사를 표명하면서 1장짜리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자료에는 농협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
"출범 100일을 맞아 '지주체제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소임을 다 했다." "농협금융지주가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대목에서는 고민의 흔적이 풍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달리 갑작스러운 사퇴는 안정은커녕 혼란만 부추겼다. 내부에서는 100일도 채우지 못하는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위상에 대한 자괴감이 고개를 들고 외부에서는 '외부 압력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초 금융지주 회장 선출 때부터 예견됐다. 당시 농협은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거물급 외부인사를 영입하려 했으나 낙하산 논란과 보수 부담 등을 의식해 은행장에 내정됐던 신 회장이 겸임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2년간의 임기 동안 5대 금융지주의 하나인 농협금융지주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회장 자리를 '땜빵'하듯 채운 것이다.
낙하산 논란에도 과감히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는 '뚝심'도,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인물은 좀 떨어지지만 내부 인사로 경영을 이끌어가는 '소신'도 없는 인사정책이 최고경영자(CEO) 공백이라는 중대 사태를 부른 것이다.
3월 초 사업구조 개편을 완료한 농협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이 끊기는 오는 2017년까지 확실한 자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CEO의 갑작스러운 사퇴를 농협의 주인인 300만 농민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농협의 돈줄을 책임진 농협금융지주 수장은 헌신짝 버리듯 그만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수조원의 혈세가 들어간 곳이다. 3개월 만에 회장이 물러났다면 인사권을 쥔 정부 당국자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도 농협도 국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