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 달만에 국내 주식을 가장 많이 사들이는 등 고조되기만 하던 북핵 리스크의 증시 영향력이 ‘일단 멈춤’에 들어갔다. 미사일에 억눌려온 증시도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에 한동안 가려있던 기업들의 실적 둔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당분간 북핵과 엔저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지속될 수 밖에 없어 어닝시즌에 다가갈수록 실적 개선주와 악화주의 주가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11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518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이틀 연속 순매수에 나섰다. 하루 순매수규모로는 지난달 4일(4,161억원) 이후 가장 많았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북핵 리스크가 커지면서 공격적 순매도에 나섰으나 지난 10일을 기점으로 분위기 전환에 나서는 모양새다. 코스피지수도 이날 금리동결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 힘입어 전날보다 14.22포인트(0.73%) 오른 1,949.80으로 장을 마감했다.
곽병열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의 경우 북핵 이슈가 일단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해 매도세를 멈춘 것으로 보일뿐 아직 매수기조로 돌아섰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며 “앞으로 증시의 관심사는 추경과 특히 어닝시즌을 맞아 개별 기업의 실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상장사들의 실적은 전체적으로 증시에 우군보다 적군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IT와 유틸리티, 소비재 등 일부 업종의 경우 실적전망이 상향되고 있어 업종별, 종목별 차별화가 예상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형주 100개 종목의 총 영업이익(최근 1개월 전망치)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줄어든 31조 5,000억원으로 추정됐다. 특히 영업이익이 예상치보다 10% 이상 줄어들 종목이 30여개로 분석됐다. 대형주 100여개 가운데 30% 가량이 어닝쇼크를 기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어닝서프라이즈가 예상되는 종목은 10개에 그쳤다. 삼성증권 역시 이들의 1분기 영업이익이 31조2,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실적 경고등을 켜고 나선 것은 전날 GS건설이 시장의 전망치와 한참 엇나간 실적을 내놓은 탓도 크다. GS건설의 1분기 영업익은 당초 500억원이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5,355억원 적자로 드러났다.
일부 증권사는 GS건설의 목표주가를 하룻새 기존보다 55%나 깎았고 증권가에서는 1년에 한 두번 나올까 말까한 ‘매도’의견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GS건설은 하한가까지 추락했다.
GS건설뿐 아니라 실적 우려가 부각된 상당수 종목들도 이날 무더기로 목표가가 낮춰졌다. 이날에만 CJ대한통운이 실적둔화 우려에 목표가가 13% 깎였고 삼성SDI, LG화학, 현대위아, POSCO 등 국내 업종대표주의 목표가도 잇따라 하향조정됐다.
반면 삼성전자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와 SK하이닉스, NHN, 한국전력 등의 경우 실적이 상향조정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어닝시즌이 가까워질 수록 투자자들로부터 더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홍승표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 1분기 주식시장은 실적이 좋아지는 업종과 나빠지는 업종간의 주가 양극화가 한층 심화될 것”이라며 “국내 수급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관과 외국인이 실적개선 종목위주로 압축투자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은 실적 유망업종으로 IT와 유틸리티를 꼽고 관련주로는 삼성전자ㆍLG전자ㆍSK하이닉스ㆍLG디스플레이ㆍ한국전력 등을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