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2개국(G2) 외교로 미국을 압박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국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의 관계도, 골치 아픈 북핵 문제도 아닌 그간 잘 풀렸던 양안관계가 시진핑 외교의 발목을 잡았다. 물밑에서 진행하던 양안 정상회담도 물거품이 됐다.
지난달 29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는 마잉주 총통을 국민당 주석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지난 3일 마 총통은 "선거 참패에 대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국민당 주석직에서 사퇴했다. 6개 직할시를 포함해 22개 현(시) 선거구에서 6명의 시장을 배출하는 데 그치고 6개 직할시에서 신베이 한 곳만 빼고는 모두 패배했으니 책임을 피하기 어렵기는 하다. 전통적으로 국민당의 텃밭이었던 타이베이·타이중에서 참패한 것은 충격이다.
대만 선거·홍콩 시위로 입지 좁아져
이번 대만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시진핑 지도부는 국민당의 참패 원인이 친중국 성향의 대륙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거리를 두려 한다. 자칫 선거 패배의 원인을 대륙정책으로 몰아갈 경우 공들인 양안관계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관영 환구시보는 이번 선거 결과를 마잉주와 국민당의 실패한 복지정책 탓이지 대륙정책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거의 달인이라고 불리던 마잉주에게 쓴 패배를 안긴 원인이 마잉주의 집토끼인 군인·공무원·교사들에 대한 복지혜택 축소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의 민심은 마잉주 정부의 일관된 친중국 정책에 대한 배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대만 경제의 중국 본토 의존도가 높아지며 대만 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산업 공동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며 중국을 바라보는 민심은 싸늘해졌다. 여기에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일찌감치 중국 본토로 근거지를 옮긴 대기업에만 이익을 주고 있다는 분석은 민심을 국민당 정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도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뒤늦게 마잉주 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허울뿐이라는 현실을 대만인들에게 심어줬다.
시진핑 외교는 대만 선거 결과로 시험대에 올랐다. 대만을 경제에 이어 정치까지 친중국 정권으로 묶어둬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동시에 주변국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했던 시진핑의 주변국 외교 전략은 대만의 변화에 수정이 불가피하다. 아예 대놓고 미국이 시진핑 정부가 영유권 분쟁 등으로 주변국을 위협하고 인권 문제 등에서는 후진적이라고 비판을 해도 성공적인 주변국 외교는 이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대만 선거 결과와 70일을 넘긴 홍콩 민주화 시위는 시진핑 외교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진핑 외교에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길어야 1년이다. 오는 2016년 1월 대만 총선을 시작으로 3개월 후에는 한국 총선이 치러진다. 또 미뤄진 태국 총선도 치러진다. 그해 11월8일 미국 대선은 G2 관계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G2와 주변국의 정치 구도 변경에 대응해 변화해야 하는 입장이다. 주변국 정권의 행방에 따라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섰던 중국이 자칫 스스로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29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 최고 결정기구인 중앙외사공작회의가 열렸다.
정치구도 변화로 전술변화 가능성
2012년 11월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 회의는 이례적으로 회의 결과가 신화통신 등을 통해 공개됐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를 강조하는 동시에 영유권 분쟁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서도 '주변국과의 운명 공동체'라는 전술적인 변화에 대한 언급도 내놓았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지속적인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다. 주변국들의 정치구도 변화에 따른 중국 외교의 변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직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의 변화에 따라 한중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책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변수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