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심층진단] "中은지원 늘리는데… 국내 금융권은 추가 담보·조기 상환 압박"

[자금·신용위기 몰린 해운·건설업] ■ 돈줄 막힌 해운업계<br>금융권, 시황 악화되자 신규 대출도 극도로 제한<br>요건 갖춰도 高이자 부담… 업계, 외국계銀 눈돌리기도<br>"선박금융 활성화 등 근본적 대책 필요" 목소리


중견 해운업체 A사는 지난해 말 핸디사이즈급 벌크선을 추가로 도입하기 위해 금융업체와 선박금융 조달을 협의하다 사옥까지 담보로 내놨다. 전세계적으로 해운경기가 침체되면서 선박금융이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이야 그나마 금융권과 협의가 이뤄지지만 우리 같은 중견업체들은 자금조달이 하늘의 별 따기"라며 "특히 요즘은 금융권에서 평가하는 선박가치가 하락하다 보니 추가 담보가 없으면 선가의 50%도 마련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공급과잉에 따른 운임하락과 고유가에 신음하는 해운업계가 국내 금융권의 높은 문턱에 또 한 번 좌절하고 있다. 특히 해운업에 대한 금융권의 홀대는 만성적인 문제여서 국내 해운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선박금융 활성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벌크선운임지수(BDI)가 최근 8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지는 등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수준으로 해운경기가 침체되면서 해운사들의 돈줄이 말라붙고 있다.

해운시황이 악화된 후 금융권이 기존 대출금의 조기 상환과 추가 담보, 선박담보 인정비율 축소 등을 요구하는 한편 신규 지원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해운업계에서 "금융권이 화창한 봄에 우산을 빌려줬다가 장마철에 회수해간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호황기 때도 선박금융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며 "하물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아예 돈 빌릴 생각조차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선박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선박금융의 저변은 상당히 취약하다. 국내 금융권은 해운업을 다른 산업군과 동일한 잣대로 놓고 부채비율 등을 비교하기 때문에 고가의 선박을 사거나 빌리느라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해운사들은 대출요건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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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체가 대출요건을 만족시킨다 해도 높은 이자율이 또 다른 걸림돌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사의 경우 선박에 투자를 하면 부채비율이 올라가고 기업 신용등급이 낮아져 이자율은 높아지는 구조"라면서 "같은 조건으로 해외에서 6~7% 이율이라면 국내서는 8% 안팎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 해운사들은 국내 금융권보다는 유럽ㆍ중국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훨씬 수월한 실정이다. 실제로 해운 호황기인 2007년에는 선박금융의 국내 조달 비중이 78%에 달했으나 이후 해운경기 위축으로 국내 선박금융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2010년 국내 조달비중은 40%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 해운사의 경우 지난해 선박금융 가운데 절반가량을 유럽계 은행에서 조달했고 나머지의 절반 정도는 중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금융권에서 조달한 비중은 20%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9월 STX팬오션이 조달한 총 5억1,000만달러 규모의 신디케이션 선박금융 역시 주간사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계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하지만 외국계 은행에서 선박금융을 조달하는 것도 대형 선사들에 국한된 얘기로 중소업체들의 사정은 더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요즘 같은 운임이면 중소업체들의 경우 선박 운영비용은 물론 배를 빌리고 치르는 용선료조차도 마련하기 힘든 실정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최근 정책금융공사ㆍ부산은행ㆍ외환은행ㆍ산은캐피탈 등이 중소 해운사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3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정도 지원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라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중국은 해운경기가 불황이었던 2009년 자국의 해운ㆍ조선업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선박금융 지원을 시작했으며 이는 중국 조선소의 신규 수주량이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데 밑받침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은 중국은행ㆍ중국수출입은행ㆍ중국공상은행과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 등 국책금융기관을 총동원해 선박금융 지원을 확대했으며 '자국선박에 의한 자국화물 운송 실현'이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대규모 선박펀드도 조성하고 있다. 중국의 선박금융 규모는 2010년 기준 약 880억~1,020억달러 규모로 세계 선박금융의 19%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해운업계는 물론 조선업계를 위해 선박금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현 시점이 국내 금융권이 선박금융을 일으킬 적절한 시점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신조선 발주가격이 원가 수준으로 추락해 금융사 입장에서 추후 자산 및 담보가치 하락으로 인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금융기관들도 신규 수익원 창출 및 지속가능 경영의 일환으로 선박금융 분야에 진출한다면 앞으로 호황기가 도래했을 때 국내 조선업과 해운업뿐만 아니라 금융업ㆍ보험업 등 유관산업 전체가 중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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