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간연구소에서 친일 인명사전을 만든다는데 거기엔 많은 함정이 있는 것 같다. 잘못하면 엉뚱한 면죄부를 줄 수도 있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군인 홍사익(洪思翊) 중장의 케이스를 보자. 일본 육군에서 한국인으로서 최고 계급인 중장까지 올라갔으니 친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좀 더 내용을 잘 알아봐야 할 것이다. 과거 일제가 조선 왕족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특별대우도 하고 장성 계급도 줬으나 한국인은 대개 대령이 한계였다. 그러나 洪중장은 민간출신으로서 일본 육사와 육군대학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쳐 중장까지 승진했다. 특별한 케이스였다.
그렇다고 출세 지향적인 천재형도 아니고 성실한 성품의 충직한 군인이었다 한다. 또 온화하고 과묵했지만 심지가 굳어 창씨개명을 끝까지 안 했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 한국식 발음은 어쩔 수 없다』며 한국식 일본어를 숨기지 않았다 한다.
2차 대전 말기 남방군의 병참감으로 필리핀에 부임했는데 직책상 포로수용소가 관할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전 후 포로학대라는 죄명를 쓰고 전범으로 교수형을 당했다. 필리핀에서 전범 재판을 받을 때 일체의 변명을 하지 않고 시종 침묵으로 일관한 일화는 유명하다.
洪중장의 인품과 행적을 잘 알던 옛날 부하들은 그를 구명하기 위해 노력도 하고 마지막엔 맥아더 사령관에게 탄원서까지 냈으나 결국 판결을 바꾸지는 못 했다. 당시의 분위기 때문이다.
남방으로 부임하기 전 일본육사 동기인 지청천(池靑天) 광복군 사령관이 광복군에 오도록 연락했으나『지금 일본군에서 가장 계급이 높은 자가 적전 탈출을 하면 남아있는 한국 출신들은 어떻게 되겠는가』하고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다.
洪중장의 처형에 대해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는데, 심지어 일본군이 한국 출신에게 골치 아픈 포로 관리의 책임을 맡겨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설도 제기됐다.
일본의 지식인들도 洪중장에 대해선 많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데 몇년 전 유명한 평론가 야마모토( 山本七平) 씨가 방대한 재판 기록을 뒤져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는 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막상 조국인 한국에선 친일파로 분류된다 하니 지하의 洪중장은 어떤 심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