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히는 일이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은 제대로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터이다. 하나라도 더 배운 사람이 남보다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이 필요 없는 경험칙이라 하겠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고 배웠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맹세했었다. 시내 모든 집의 전등이 꺼지기 전에는 결코 잠들지 않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밤을 새웠던 추억이 있는 세대여, 그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헌법은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과 대학의 자율성도 보장하고 있다. 인간다운 문화생활과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주는 기능이 교육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칙은 그렇게 잘 정해놓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헌법이 정해놓은 원칙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란 취학의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고 성별ㆍ종교ㆍ재산ㆍ신체조건 등 교육 외적 요건에 의해 차별이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모든 국민이 수학능력과 관계없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균등한 교육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수학능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하고 뒤처지는 학생들에게는 또 그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해야 본인에게 득이 되고 국가도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으므로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권리를 외면해서도 안된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원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다. 각 대학은 자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대학입시제도를 놓고 논의할 때마다 헌법이 말하고 있는 소위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라든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이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