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리더는 일하는 사람 아닌 '일 나눠주는 사람'

<5> 위임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할 일·하면 안 될 일 명확히 지시… 일하는 방식은 실무자에 맡겨야

조직원 실수 처벌·용서 판단 신중히


옛날 옛적에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하루는 술에 기분 좋게 크게 취하더니 그만 잠에 들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모자는 제 자리에 잘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옷이 조금 흐트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여봐라! 옷 담당자와 모자 담당자를 당장 불러 오너라!” 두 시종은 벌벌 떨면서 임금앞으로 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고 다그치자 이실직고를 한다. 들어 본 즉, 핵심 내용은 어제 옷을 담당하는 자의 모친이 몸이 불편해서 황급히 집에 먼저 가면서 대신 일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부탁을 이기지 못한 모자 담당자가 옷까지 챙기다 보니까 서툴러서 일을 그르친 것이다. 자 여러분이 임금님이라면 이 두 시종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인가? 2000여년 전 중국의 철학자 한비자가 제시한 문제다. 한비자 자신의 처방은 둘 다 엄벌에 처하는 것이다.

첫째, 옷 담당관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부모에 대한 효도를 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전에 허가를 득했어야 한다. 사전보고 없이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둘째, 모자 담당자 역시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 행했다. 비록 동료의 사정이 딱하더라도 상관의 사전허가를 득하라고 권고해야 옳았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그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래서 임금님은 두 시종에 모두 엄하게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 임금은 잘한 것일까? 일이 발생할 때마다 엄벌을 가하면 그 앞에서는 사람들이 일단 듣는 척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우러나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시가 소홀하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곤 한다. 물론 적발됐을 시에 내려지는 처벌을 더욱 강화하면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외부감시와 처벌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면역이 생기기 때문에 처벌의 강도는 점점 더 올라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재의 공포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임금이 옷 정리와 모자 정리라는 두 가지 임무가 과연 그렇게 확연히 구분되는 것인가? 아니면 두 가지 임무를 두 사람이 다 할 수 있도록 해서 한 사람이 유고 시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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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직일수록 리더는 위임을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위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어디까지 위임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리더는 일하는 방식(How To Do)에 대해서는 위임하는 것이 좋다. 기본교육이 끝나고 일을 맡기고 나면 그 다음에 그 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위임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대로 그 일을 하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제일 좋다. 물론 “모르거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좋다”라고 말해 줌으로써 모든 일을 혼자 다 처리해햐 한다는 강박관념을 덜어주는 것도 리더로서 꼭 해야 할 일이다. 반면에 무엇을 해야 하는 지(What To Do)는 가능한 자세하고 명확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직무명세서가 비교적 자세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조직원들은 헷갈리게 된다. 리더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위임을 해야 한다 해야 한다”라고 말들은 많은 데 왜 실제로 그렇게 잘 되고 있지 않을까? 그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부하들이 월권을 하기 때문이다. 월권하는 이유는 무엇을 하라(To Do)는 리스트만 주었지, 무엇을 하지 말라(Not To Do)는 리스트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금님이 엄하게 책임을 물었던 것은 과연 리더로서 잘한 일일까? 왕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말해주었다는 점에서 처벌의 근거는 확실하다. 물론 사전보고 없이 상관을 속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역시 처벌받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어떤 직원이 일을 그르친 경우, 그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기 전에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이 하나 있다. “‘자신이 이 일을 혼자서 잘 해낼 수 없다’라는 판단이 섰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노모가 위급해서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한 번의 용서가 조직의 기강을 해이할 것인지, 아니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큰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는 리더가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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