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바꿔보자.” 일본 국민들의 변화 욕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영원할 것 같던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가 붕괴된 것은 바닥을 기는 경제와 부패로 얼룩진 정치 현실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멸과 이에 대한 개혁 열망이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압승으로 사상 유례없는 일본의 정권교체가 현실화된 배경으로 지난 54년간의 자민당 장기집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것을 꼽고 있다. 일본 정치의 새로운 변화 파고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에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나아가 국제무대에서 미국에 절대 의존해온 일본의 입장도 새로운 자리매김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멀리는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인 지난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140년 만에, 가깝게는 현대 일본 파벌정치의 시작인 1955년 자유민주당 출범 이후 54년 만에 등장한 일본의 정권교체를 시리즈로 정리한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물러난 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등 후임자들은 정국 장악에 실패하고 1년 만에 잇달아 총리직을 내놓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현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 역시 경제위기로 고단한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기는커녕 잦은 말실수 등으로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는 악수를 뒀다. 총리의 잇단 낙마와 실정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 실추로 이어져 금융위기 초반만 해도 상대적으로 건실해 보였던 일본 경제가 좀체 살아나지 못하는 주원인으로 지목돼왔다. 빈부격차 등 갈수록 심화된 구조적 문제도 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1955년 출범한 자민당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내세우면서 고도성장을 일궈왔지만 그 과정에서 관료 의존이 지나치게 심화되면서 각종 정책이 중앙 중심화되는 등 부작용을 불렀다. 그 결과 빈부 및 도농 격차가 더욱 벌어져 자민당 정권에 대한 민심 또한 극도로 악화됐다. 특히 2001년부터 5년간 집권했던 고이즈미식 정치는 비정규직 양산, 사회보장 축소 등으로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사실 자민당 몰락의 조짐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5년 창당 이후 40년 가까이 단독으로 정권을 유지했던 자민당은 이때부터 사회당ㆍ공명당 등 군소 정당과 연립하지 않으면 안정적 정권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우정 분야 민영화 등 개혁 조치를 내걸면서 전체 의석의 3분의2 이상을 확보하기도 했지만 자민당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제1당 자리에 올렸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말 그대로 정권 교체의 서막이 열린 셈이었다. 노나카 나오토 가쿠슈인대 교수는 “자민당은 1960년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만년 여당으로 군림해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경제성장을 위해 안정적 보수정당을 필요로 했던 일본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선 승리에는 민주당의 선거전략도 주효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 불신을 겨냥, ‘새로운 일본’ ‘이번에는 정권 교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답답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하는 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총선 이후 정국 전망에 대해서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민당이 그간의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대미ㆍ대아시아 외교, 대북정책, 경제위기 극복방안 등에 대해 강도 높은 공격을 퍼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참의원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민주당으로서는 사민당ㆍ국민신당 등 군소 정당과의 관계설정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민당의 경우 민주당보다 각종 정책에서 진보적인 만큼 정책 논의 과정에서 대립할 가능성도 있다. 관측통들은 민주당이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할 때까지는 여야 관계나 다른 야당과의 관계 등에서 강경 일변도보다는 강온 전략을 적절히 구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