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9일] 버나드 바루크


[오늘의 경제소사/8월19일] 버나드 바루크 권홍우 윈스턴 처칠에게 위기가 닥쳤다. 투자에 실패했기 때문. 영국 재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1929년 중반 뉴욕증시에 투자했으나 백전백패. 파산 직전의 처칠에게 미국인 친구가 원금 이상의 잔액이 남은 주식계좌통장을 건넸다. 처칠을 구해준 친구는 버나드 바루크(Bernard M Baruch). 처칠이 판 주식은 사고, 사들인 주식은 파는 정반대의 매매로 수익을 올렸다. 처칠이 끝까지 함구했던 주식투자 에피소드는 바루크의 회고록에서 밝혀졌다. 1870년 8월19일 독일계 유대인 이민가정의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바루크는 전설적인 투자자. 동료들보다 8년 늦게 대학을 나와 주급 3달러짜리 사환으로 시작, 1920년대에는 월가 최대 투자자로 성장한 인물이다. 남들과 제휴하지 않고 혼자서만 움직여 '월가의 외로운 늑대'라는 별명도 갖고 있던 그는 주가 대폭락의 와중에서 손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큰손으로도 유명하다. 주식과 원자재 선취매로 재산을 모은 40대 이후를 메운 것은 정책자문. 윌슨부터 케네디까지 대통령 8명의 경제보좌관을 40년간 지내 '숨은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1ㆍ2차 대전에서는 전시산업위원장을 맡아 생산과 가격을 통제하고 세금원천징수제도, 고무ㆍ주석 등 전략물자비축제 등을 도입했다. 국제연합(UN) 원자력에너지위원회 미국대표로 일할 때 제시한 '미국이 세계의 핵을 관리ㆍ통제한다'는 '바루크 플랜'은 오늘날까지 미국 핵정책의 근간으로 내려오고 있다. '냉전'이란 단어를 퍼뜨린 주인공도 바루크다. 투자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경제력. 95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일과 투자자를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재산을 모으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라.' 입력시간 : 2006/08/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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