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발생 직전인 지난 97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은 ‘열린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21개 국가 과제’를 내놓는다.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해 21개 과제를 정리한 일종의 장기 국가 계획이었다. 정부기능 재정립, 경쟁 촉진, 제도의 유연성 확보, 인프라 확충, 기술혁신 등 5개 분야의 21개 과제가 제시됐다. 물론 외환위기로 빛을 보진 못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 2002년 2월에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된다. 대한민국이 10년 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총망라된 ‘2011 비전과 과제’가 발표됐다. 재경부 주도 아래 16개 분야의 경제 전문가 290여명과 정부 각 부처 공무원이 10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작성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결과다. 담긴 내용도 ▦고교 평준화 폐지 ▦재벌 규제 근원적 전환 ▦인구억제 중심의 수도권 정책 포기 ▦경자유전 원칙 폐기 ▦영어 공용어화 적극 추진 등 매우 센세이션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그 뒤로 그 문서는 찾기 힘든 고전이 됐다.
그리고 2006년 8월. 또 하나의 청사진이 발표됐다. 2005년 6월부터 60여명의 민간 작업단을 구성, 설문조사 등을 거쳐 1년여 만에 결실을 맺은 ‘비전 2030’이다. 정부는 마치 옥동자라도 낳은 양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번 계획에 대해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지 않다. 집권 중반기를 넘어선 뒤 국정에 대한 자신감이 미래를 대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게 한 전직 관료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