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해수(83·2005년 타계)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 일제 말 동경고공(東京高工)을 나와 지난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에 고급기술간부 공채 1기로 입사한다. 지원자 2천명 중 3명이 뽑혔는데 그가 1등이었다.
그는 1년 만에 국산 라디오 1호(금성 A-501)를 제작해 한국 전자산업시대의 막을 연다. 당시 고명딸 진주는 세 살이었다. 아버지가 라디오에 이어 전화기·TV 개발에 여념이 없을 때 진주는 부러울 것 없이 자라 이화여대 약학과에 진학한다. 1978년 졸업 후 서울 백병원 약사로 일하던 그는 노동시인 박노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된다. 민주화에 적극적이었던 진주는 남편을 따라 노동운동에 합류한다. 구로공단에서 5년간 미싱사로 일했고 1991년에는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남편과 함께 수감돼 실형을 산다.
진주씨는 2007년 이런 기록들을 모아 '아버지의 라디오(느린걸음)'라는 책을 낸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짐을 나눠 지고 현대사를 치열하게 헤쳐온 부녀(父女)의 불화와 갈등, 그리고 화해에 관한 얘기다. 딸은 수형(受刑) 중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다.
"조국 근대화의 주역으로, 엔지니어로 고군분투해온 아버지가 기술의 진보를 통해 우리 삶의 지평을 얼마나 밝게 열어줬는가"라고. 아버지는 딸에게 그 세대의 소명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산업 현장의 우리는 위대했지만 그래도 후손들이 기립박수만을 쳐줄 거라는 기대는 접고 앞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새로운 시대의 무게를 덜어줄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필자는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문득 궁금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충돌, 그 복판에 있었던 진주씨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생면부지의 그와 어렵사리 연락이 됐다. '나눔문화'라는 NGO 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그에게 소감을 구했더니 13일 짤막한 글을 e메일로 보내왔다. '국제시장 보기' 논란에 참고가 됐으면 한다. '국제시장' 관객 모두가 감독의 눈물 짜내기에 당했다고 믿지 않기에.
"'국제시장'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약속'을 근간으로 한국 현대사를 깊이 파고든 작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시장'이라는 제목에 끌리고 배우 황정민의 소탈한 연기가 뿜어낼 재미를 기대했다가 새삼 '애국심'이 솟구쳤을 것입니다. 외국인이 봤다면 한국인의 질긴 생존력과 독하고 착한 사랑에 놀라고 분단의 고통을 더불어 실감했을 겁니다. 한반도에서 생명을 이어온 역사문화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다른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확장하는 가교를 놓아가야 합니다. 인생의 '막장'을 딛고서라도 살아내야만 하는 것은 사랑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