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투명성이 경쟁력이다] 4.증시 불공정거래 근절 요원한가

잇단 게이트… 증시 투명성 42위"5억원만 내면 책임지고 주가를 두 배 이상 올려 드리겠습니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A사의 최모 사장은 얼마 전 한 증권사의 지점장이 회사를 찾아와 불쑥 던진 제안에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5억원을 낼 테니 시드머니(종자돈)로 5억원만 얹어주면 주가를 충분히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도 이어졌다. 최 사장은 "다른 사장들도 이 같은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더라"면서 "우리 주식시장이 얼마나 혼탁한 지를 새삼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들어 정신없이 터져 나온 굵직굵직한 주가조작 사건을 돌이켜보면 A사 최사장의 경험은 그리 놀랄만한 얘기가 아니다. 이용호씨의 경우 구조조정회사(CRC)를 이용해 삼애인더스ㆍ레이디가구ㆍKEP전자 등 수많은 기업을 인수해 주가를 조작했다. 심지어 '보물선 사건'으로 유명한 삼애인더스 한 종목에서만 무려 256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닷컴 버블시절 '코스닥의 황제주'로 군림했던 새롬기술의 경우 최대주주와 경영진들이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 자사주를 대량으로 내다팔아 112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머쥐었다. J창투 대표는 투자조합이 보유한 세원텔레콤 등의 주식을 시세의 10% 가격에 매각했다는 허위매매계약서를 작성해 167억원을 횡령했고 동신에스앤티는 인수기업의 주식을 사방에 뇌물로 뿌려 300억원대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이 같은 불공정 행위는 거래소나 코스닥, 장외시장 가릴 것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관련자들도 CRC대표에서 증권사 지점장, 투자자문사 대표, 창투사 임원, 최대주주, 펀드매니저까지 폭 넓게 걸쳐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모두 57개사가 시세 조종과 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조사에 착수했던 사건만해도 174건에 이르고 있다. 통상 불공정거래가 발생하면 적게는 50억원부터 많으면 600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횡령사건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올 상반기에만 4,000억원을 웃도는 수치가 나온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과 주주들에게 떠넘겨진다. 특히 작전 세력들이 주로 손쉬운 코스닥종목을 대상으로 공작을 벌이면서 코스닥시장은 아예 투자자들의 기피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거래소로 옮겨가거나 소속부를 벤처에서 일반기업으로 옮기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물론 정책당국의 규제조치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불공정 행위를 벌일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도록 형벌을 강화했으며 금융감독위원회에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는 강제조사권을 부여했다. 주가 조작사범을 신고하면 상금을 주는 '파파라치' 제도까지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상 처음으로 증권사 지점을 3개나 폐쇄하는 등 극약처방까지 단행됐다. 조종연 금융감독원 조사국장은 "올 상반기에 거래소나 증권협회에서 이관돼온 불공정 의뢰건수는 100건을 웃돌고 있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다"면서 "앞으로 제도 개선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 투명증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투자자 오도 혐의를 받았던 메릴린치증권이 투자의견을 대폭 축소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자사 이익만을 노리고 투자자를 현혹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투자자의 곁에 서서 깨끗한 투자풍토를 일궈내겠다는 새 바람을 월가에 몰고 왔기 때문이다. 박동명 신한증권 수석연구원은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세계증시를 대상으로 투명성조사에서 한국은 42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증시가 불투명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외국인들은 물론 일반투자자들도 시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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