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망원인(2001년 기준) 중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간질환(간암제외)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조6,000억원에 달하고, 사망으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은 무려 2조3,130억원인 것으로 추산돼 관련질환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영호 부연구위원과 고숙자 연구원은 최근 `5대 사망질병의 사회ㆍ경제적 비용 추계`논문을 통해 “사망원인 5대 질병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암 7조7,358억원, 뇌혈관질환 2조3,138억원, 심장질환 2조1,417억원, 당뇨병 1조1,588억원, 그리고 간질환은 2조6,201억원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2001년 전체 사망자는 24만2,730명으로 이중 남자는 13만4,866명ㆍ여자는 12만7,864명”이라면서 “사망 원인별로는 암(악성 신생물)이 123.5명으로 가장 많고 뇌혈관질환 73.8명, 심장질환 34.2명, 당뇨병 23.8명, 간질환이 22.3명 순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망원인 순위로는 5위에 그치고 있는 간질환이 손실비용 만큼은 암 다음으로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질병의 특성상 경제활동이 왕성한 젊은 층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은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를 들면서 경구용 B형 간염 치료제의 건강보험 기간을 평생 1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환자는 물론, 의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간질환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많은 것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30~50대에 해당되는 남성 사망률이 뇌혈관질환이나 심장병 및 당뇨병보다는 현저히 높아 사망에 따른 소득손실액이 사망순위와는 다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간 질환의 사회경제적 비용에 이번 추계에서 빠져 있는 간암까지 포함하면 최소 4조원은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의들은 “급성 및 만성 B형 간염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각각 17명ㆍ16명을 차지하고, 전체 만성간질환의 약70%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면서 “B형 간염의 경우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하기 전에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B형 간염의 경우 70% 정도가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해 환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과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고,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을 초래하는 만큼 악화하기 전에 사전 치료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건강보험 지급 대상자 가운데 간암으로 연간 진료비가 500만원이 넘은 환자는 9,488명으로 분석돼 조기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건강보험료 사용내역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간암을 포함한 중증환자의 총 진료비(비급여는 제외)는 2조9,805억원이었고 이중 2조2,812억원(77%)을 보험재정에서 부담했다.
중증 환자 발생빈도는 만성신부전이 1만9,088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위암(1만2,453명)ㆍ무릎관절증(1만374명)ㆍ폐암(9,969명)ㆍ간암(9,488명)ㆍ뇌경색증(9,026명) 등의 순이었다. 간암의 경우 무려 1만명에 육박하는 환자들이 개인 당 연간 500만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지원을 받았다.
500만원은 만성 B형 간염 환자가 경구용 치료제를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조건(12~13만원)에서 3년 이상 복용하고도 남는 액수이다. 한편 중증 질환의 경우 남자는 만성신부전과 위암ㆍ폐암ㆍ간암ㆍ급성심근경색증이 많았고, 여자는 무릎관절증과 만성신부전 유방암 뇌경색증 대퇴골 골절 등의 순으로 발생빈도가 높았으나 전체적으로는 남자(15만9,336명)가 여자(14만223명)보다 중증질환을 더 많이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 의료인 체계적 관리 필요
B형 간염에 대한 조기치료와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인으로서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거나 환자로 분류되는 인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실태파악이나 관련 규정은 미미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병원의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의료계에 종사하는 인력이라면 감염 위험성이 큰 B형 간염에 대한 정기검사를 받는 것은 필수적”이라면서 “국내의 경우 환자가 무려 5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국은 의료인으로서 전염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없는지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B형 간염 환자의 혈액으로 오염된 주사바늘이나 수술기구에 의해 의사가 상처를 입으면 B형 간염이 전염될 가능성은 30%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B형 간염 혈액에는 고농도 간염 바이러스가 존재해 주사바늘에 묻은 소량만으로도 약 100명 정도는 감염시킬 수 있다.
의료인이 병원에 근무하면서 간염 환자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매일 많은 환자를 만나야 하는 의료인이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일 경우 환자들에게 B형 간염을 전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유럽 각국의 의학지에 발표된 자료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1971년~1999년까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인 외과의사(40명)로부터 감염된 환자는 모두 404명. 확인되지 않은 환자를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환자들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e항원이 양성일 때 즉, HBeAg 양성일 때이다. 바이러스 증식이 심하면 혈액 속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높아 전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이라면 절대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영국ㆍ캐나다ㆍ미국 등에서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해 운용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HBeAg 양성인 외과의사가 혈액검사를 거부하면 병원심사위원회에서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전염 위험성이 큰 수술은 맡지 못한다.
영국은 HBeAg 양성인 의사는 병원심사위원회에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하고, 위원회에서는 의사의 거취문제를 결정한다. 복잡한 사정이 있어 병원자체에서 처리하기 곤란하다면 보건부 산하 상설자문위원회에 회부하지만 원칙적으로 HBeAg가 양성이면 전염 위험성이 높은 수술에는 참여 시키지 않는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HBeAg가 양성이면 관련지역 보건소장은 전염 위험성이 높은 시술은 맡지 못한다. 그러나 C형 간염은 감염되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아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C형 간염의 경우 영국의 한 흉부외과 의사가 환자에게 감염시킨 것이 최초로 알려진 사례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면서 마약중독자인 마취과 의사가 마취 시작하기 전에 환자에게 주사할 마취약의 절반을 자신에게 먼저 주사한 뒤 나머지를 환자에게 주사함으로써 217명에게 C형 간염을 감염시킨 일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B형 간염 보균자라도 수술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안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이면서 수술에 참여한다면 철저한 관리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인에 대한 예방백신 접종 의무화 규정의 경우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시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나 환자가 매우 적은 국가와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진료에 참여하는 의료인(의사 간호사 등 행정직을 제외한 병원종사자)이라면 정기적으로 B형 간염 감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고, 활동성으로 판명될 경우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의 경우 의사가 간염 보균자로 판명되었을 때 “단 한 사람의 환자라도 그 의사로부터 진료시 감염됐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 때 병원장은 지역 보건소장과 공동으로 조사ㆍ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1년 국립방역원(Center of Disea-ses Control)에서, 영국은 1993년 보건부가 관련 규정을 발표했다. 캐나다는 1992년 B형 간염에 대한 규정을 발표한데 이어 1995년에는 C형 간염 규정을 마련했다.
항체 없는 남성 콘돔 사용해야
전세계적으로 20억명 이상의 인구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이중 최소 3억5,000만명이 만성 보유자로 추정되며 다양한 감염경로를 거쳐 전파되고 있다. 특히 B형 간염 환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프리카ㆍ동남아 및 중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바이러스 보유자는 몇 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면
▲간 효소검사 결과 정상이며 진찰소견도 정상인 건강한 보유자
▲아무 증상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는 사람들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초래된 합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 등이다.
첫번째는 헌혈이나 신체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B형 간염 항원이 양성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둘째 그룹은 그대로 방치하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정확하게 진단을 받은 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간염에 잘 걸릴 수 있는 경우는 혈액ㆍ정액ㆍ수유이고, 타액(침)으로도 전염된다. 가장 흔하게는 간염환자의 혈액을 통해 전염되고 다음으로는 환자의 몸에서 분비되는 거의 모든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
HBe항원 양성인 보유자라면 배우자에게 감염시킬 확률이 70~80% 정도이다. 음성이 되면 전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HBe항원 양성일지라도 배우자가 예방접종을 받으면 감염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환자든 보유자이든 임신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임신 중에 지장을 주는 일도 없다. 태아에 대해서도 간염 바이러스가 나쁜 영향을 주었다는 보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신생아는 출생시 어머니로부터 감염될 가능성은 있다.
어머니에게서 아기에게 옮겨지는 수직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항원이 유무를 막론하고 바이러스가 양성인 산모에게 태어난 모든 신생아에게 간염백신을 접종 시키는 일이다.
출산시 어머니 혈액이 조금이라도 아기 혈액과 접촉하면 수혈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므로 감염 가능성이 높다. 감염은 혈액이 아니라도 점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재 B형 간염 환자는 대부분 20~40대가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행위로 인해 감염이 되는 것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남성의 경우 간염검사 결과 항체가 없다면 성 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이다.
만성 간염 보유자의 경우 간에 무리를 주는 약물(한약포함)은 삼가야 한다. 특히 만성간염으로 악화할 수 있으므로 주기적인 진찰과 간 기능검사(6개월에 1회 정도)를 실시, 만성 간염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만성 보유자 중 전신무력감 피로감 피부가려움증, 목이나 어깨에 거미줄 모양의 붉은 반점이나 황달 등이 나타나면 바로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분명한 것은 만성 보유자라도 생활수칙만 잘 지키면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상영기자 sa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