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정준양 회장 결국 사퇴] 민영화 공기업에 노골적 압박… 이석채 사퇴이후 더 못버텨

■ 왜 물러났나<br>대통령 방중 만찬 등 제외… 정부와 갈등설 기정사실화<br>세무조사로 압력 거세져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한 외부행사에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15일 정 회장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서울경제DB

결국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물러났다. 전임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전격 사퇴한 것이다. 이석채 KT 회장이 물러난 후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했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사임한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정 회장의 거취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KT와 함께 민영화된 공기업이지만 회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다른 공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가 남아 있는 전임 회장들도 외풍에 시달렸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유상부 회장이, 이명박 정부 때 이구택 회장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물러난 사례가 있다. 정 회장 역시 새 정부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를 거론하며 사임 압박이 거세게 불었다.

정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취임했다. 전임 이구택 회장이 임기를 1년 2개월 남기고 사퇴하자 7대 회장에 취임했다. 정 회장은 1975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 공채 8기로 입사해 2008년 말 포스코 사장에 올랐고 2개월 만에 포스코 회장까지 맡게 됐다. 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에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였다. 지난해 2월에는 연임에 성공해 2015년 3월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문제는 정권교체였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청와대 안팎에서 정 회장의 교체론이 제기돼왔다. 정 회장이 이명박 정부 때 취임한데다 포스코가 3조5,000억원을 들여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해외 순방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도왔다는 평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정 회장이 연임에도 성공했고 이른바 '이명박맨'으로 분류할 만하다는 것이 정 회장을 끌어내리려는 측의 주장이었다.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 발언을 인용하며 새누리당에서 정 회장 교체가 거론됐고 친박 의원들이 의견을 모아 대통령 참모진에 이를 건의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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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교체설이 나올 때마다 포스코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정부에선 선을 긋는 인상을 보여왔다. 정 회장은 6월 박 대통령의 방중 당시 국빈만찬과 8월 10대그룹 오너ㆍ총수 초청 청와대 오찬에 잇따라 제외됐다. 이 즈음부터 현 정부와의 갈등설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정 회장은 이석채 KT 회장과 함께 9월 박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경제사절단에서도 빠졌다.

이어서 국세청이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서서히 정 회장의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포스코와 국세청은 모두 '정기 세무조사'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정 회장의 사퇴는 시간문제고 길어야 내년 주총이 마지노선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10월 세계철강협회 회장에 선임됐고 해외 활동을 이어가며 사퇴설을 불식시키려는 인상을 심어줬다. 신용등급 하락과 계열사 인수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정 회장이 건재를 과시했음에도 사퇴를 결정한 것은 이 회장의 사임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물러나기로 하자 다음 타깃이 될 것을 예상한 정 회장이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청와대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후 정 회장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안다"며 "정 회장 역시 더 버티는 것보다 명예롭게 물러나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 회장이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CEO후보추천위원회는 조만간 후임 인선에 착수할 예정이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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