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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최대 도시인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임대주택 창문에 'Te Koop'이라는 팻말이 나붙어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집을 매각한다'는 뜻이다. 소유주인 주택조합(housing association)이 재원을 확충하기 위해 집을 민간에 팔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예룬 판데어페르 암스테르담주택조합연합회(AFWC) 사무차장은 "저리로 은행 융자를 받아 분양주택을 지어 판 수익금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해왔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러한 리볼빙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추가 공급 여력이 없는 주택조합들이 임대주택을 매각하고 있지만 판매실적이 신통치 않다"고 말했다.
주거복지의 물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주거복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ㆍ프랑스ㆍ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임대주택 매각ㆍ민영화로 재고량이 줄어든 반면 높은 출산율과 1~2인 가구 및 이민자 증가 등으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어 수급 불일치가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지만 서유럽의 각국 정부는 주거복지 강화 차원에서 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거 양극화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원칙이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수급 불일치 심화=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내 주요 국가들은 인구 증가와 재생사업에 따른 주택 멸실이 늘면서 만성적인 주택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자가소유를 촉진하고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1980~1990년대에 기존 임대주택을 입주자에게 대거 매각하면서 재고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1979년 31%이던 영국의 총 주택재고량 대비 임대주택 비중은 현재 18%까지 떨어졌고 네덜란드 역시 1985년 39%에서 지난해 32%로 쪼그라들었다. 민간임대 비중이 높은 프랑스도 1990년대 20% 안팎이던 임대주택 비중이 17%로 줄었다.
이 때문에 주요 도시의 인기 지역에 위치한 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통상 5~10년을 대기해야 한다. 매년 인구가 20만명가량 늘고 있는 프랑스 파리도 임대주택 입주대기기간이 평균 6년 이상이다. 프랑스 사회주택관리기관연합회(USH)의 도미니크 후렌 재무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임대주택 입주수요가 120만명에 이르지만 신규 공급은 연간 10만가구에 그쳐 수급이 원활하지 않지만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임대료 보조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주거취약계층이 극빈주거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보조에도 불구하고 임대주택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주거사정이 악화되자 유럽 국가들은 임대주택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10년 집권한 보수당ㆍ자유당 연립정부가 복지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면서도 이전 노동당 정부의 임대주택 확대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2010년 2만1,940가구, 2011년 1만9,560가구의 임대주택이 각각 공급됐다. 이는 신규 공급 주택의 약 20%를 차지하는 규모다. 프랑스도 지난해 공급된 42만가구 중 25%인 10만5,000가구를 임대주택으로 지었다.
◇기존 노후 임대주택 개량에도 적극=노후화된 임대주택에 빈민층이 집중적으로 살게 되면서 슬럼화돼 사회적 불안요소로 대두하자 유럽 국가들은 기존 주택의 개량과 자립ㆍ자활 지원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후화된 임대주택을 철거해 다시 짓고 개보수하는 데만 40조원을 쏟아 부어 불량주택을 100만가구나 줄였다. 임대주택의 26%가 '민감한 도시 구역(sensitive urban zone)'으로 불리는 열악한 주거지역에 위치한 프랑스도 2003년부터 6조3,000억원을 투입해 530개 구역의 임대주택을 철거, 재개발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2010년 한 해에만 노후된 임대주택 1만3,100가구를 철거하고 13만2,300가구를 개량했다.
판데어페르 AFWC 사무차장은 "과거 주택조합들이 임대주택만 짓고 사후관리는 소홀히 한다는 의미에서 '브릭 앤드 몰타르(brick and mortarㆍ벽돌과 시멘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물리적 공급에만 치중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최근 들어서는 주택 개보수는 물론 커뮤니티 센터 등을 중심으로 공동체성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