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녹스는 지방경제] 상위법까지 얽혀 지자체당 규제 평균 450건… 기업 투자 꽁꽁

해당 조례 개선하려면 중앙정부 차원 나서야

첨단·친환경 산업 선호… 제조업 등 홀대도 문제

자발적 투자 유치 위해 지자체에 인센티브 필요



지난해 중국 서안지역을 방문했던 한 정부당국자는 현지 지방공무원들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발로 뛰며 열정적으로 투자상담을 하는 현지 지방공무원들의 모습은 도저히 사회주의 국가의 공직자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 기업인이 방문했다고 하면 지방의 고위급 공무원까지 마중 나와 환대하고 투자 애로를 풀어주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민원인이 접수 창구에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우리 공직문화와는 너무 다르더라"라며 "우리도 지방투자 유치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외환위기 이후 기업투자 유치를 위해 많은 제도를 개선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인이 느끼는 투자 장벽은 높다.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지자체 차원의 규제는 5만2,638건. 이 중 지역별로 중첩되는 규제 등을 감안할 때 광역자치단체당 규제 건수는 평균 270여건, 기초자치단체 단위당 규제는 평균 180여건 수준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광역 및 기초 지자체당 평균 450건 이상의 규제장치가 작동해 기업의 투자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들 지자체 규제 중 대다수는 주로 입지 관련 규제다.

쉽게 말해 도시를 개발하거나 공장을 신축· 증설하는 행위 등을 제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이들 규제를 기업 친화적으로 개선하면 그만큼 지방 투자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은 지자체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표면적으로는 지자체 조례 등의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해당 조례를 만들게 된 원인이 된 상위 법률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차원의 법률 개선이 함께 이뤄지지 않고서는 지자체 차원의 규제개선이 단행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니 그야말로 지방에서는 기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상위법률을 개선했음에도 일선 지자체 창구에서는 기존의 규제를 고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상위 법률상 규제를 풀었음에도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이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지방에서는 규제가 살아 있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런 사례를 면밀히 조사해 개선하고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상위규제 개선 동향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지역별로 천편일률적인 투자유치 전략을 짜는 것도 문제다. 지자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첨단' '친환경' 산업 유치를 내걸고 있다 보니 정작 제조업체가 지방 이전을 검토하려고 해도 홀대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료는 "지자체 단체장 입장에서는 남 보기 번듯한 업체를 유치해야 재선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의료·바이오산업이나 첨단정보기술(IT)산업 유치를 공약으로 내거는 것 같다"며 "더구나 지저분한 공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지역민심이 작용해 수도권에서 제조업체가 지방으로 옮기는 게 쉽지는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 해소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주도 방식은 단기적으로 일정 부분 규제 건수를 줄이는 데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현재처럼 중앙정부에 종속적인 지자체 시스템 아래에서는 국내 지자체가 중국 서안의 경우처럼 적극적으로 투자유치 경쟁을 할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선단식으로 지자체를 끌어내 규제를 줄이라고 독촉하면 지자체는 해당 규제만 마지못해 줄일 뿐 적극적인 규제 애로 발굴 노력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우선 과제는 단순히 규제 건수 몇 개 줄이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제도를 활성화시켜 지자체가 스스로 투자유치 경쟁에 적극 나서도록 체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박사는 "기본적으로 지자체들이 투자친화적으로 제도를 스스로 개선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단체장에게 정부가 과감히 권한을 이양하되 특히 기업의 애로 사항이 큰 입지개발 관련 권한을 이행하고 투자환경을 잘 조성한 지자체를 정기적으로 평가해 재정상 지원 혜택을 '당근' 삼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권한 이행으로 투자 유치에 모범적인 성과를 보인 사례로는 제주도가 꼽히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지정된 후 1,600여개에 달하는 권한이 해당 자치도로 이양됐다"며 "제주도는 이를 통해 정책적으로 큰 고민이 필요 없는 인허가 사항은 가급적 빨리 처리할 수 있어 투자 민원 해소에 큰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