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이 출구전략을 발표할 때만 해도 위기라는 단어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위기론이 본격 대두된 것은 지난 21일 인도 루피화가 폭락하면서부터다. 이날 달러 대비 루피화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시장개입에도 불구하고 역대최저치인 63.65까지 떨어졌다. 서울경제신문 26일자 1면을 보면 터키ㆍ인도네시아ㆍ태국 등 신흥국은 최근 들어 채권가격ㆍ주가ㆍ통화가치가 동시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사람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맛봤다. 이듬해 봄 일산에서 전셋집을 구하던 때가 선명히 기억난다. IMF 직전까지 2억원에 달하던 일산의 32평 아파트 전세가는 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매매가격은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외환위기의 쓴맛이 조금씩 가시던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때 집 한채만 사놨으면" "그때 주식이라도 좀 할 걸" 이라는 장탄식이 술자리의 안주였다.
신흥국 금융위기론이 나오는 지금 IMF 경험을 살려 신흥국에 투자를 하면 어떨까. 주가가 조금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집 팔아 투자하면 대박이 터질까. 상상은 자유지만 결과에 대한 확신은 없다.
신흥국 위기 틈탄 투자 확신 없어
우리는 IMF때 장롱 속에 넣어둔 금을 내다팔아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지금 신흥국 사람들이 우리 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라면 위기의 파장은 우리 때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갈 것이다. 금융위기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투자에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인다.
투자대안은 있다. 선진국이다. 더 정확히는 미국이다. 요즘 서울경제신문에 게재되는 '투자의 창'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증권가에서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필진이 투자의 창을 한 방향으로 내고 있는 것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강달러에 올라타라"고 조언한다. 미국 경기가 회복하고 그에 맞춰 달러화가 강세로 전환하고 주가도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당분간 미국ㆍ일본ㆍ유럽 등 선진국이 주도해 글로벌 주식시장을 강세로 끌고 갈 것으로 전망한다.
오 센터장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경기 회복과 주가 강세의 순서는 첫 번째가 미국, 다음이 유럽, 그 다음이 일본이다.
한덕수 삼성증권 반포지점장에게 미국은 가계 부채비율이 급감하고 주택 수요가 회복 중으로 소비의 개선 및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곳이다. 달러화 강세도 예상돼 투자를 하면 환율상승ㆍ배당ㆍ주가상승에 따른 이득을 노릴 수 있다.
이용훈 신한금융투자 글로벌사업부 팀장은 미국 직접투자를 권한다.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테슬라모터스, 3D 프린터 선도기업인 스트라타시스, 에이즈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등 신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의 주가상승이 투자자들에게는 주목할 만한 기회다. 그는 미국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투자자에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5년째 우상향하며 전고점을 경신하는 미국의 주식차트를 언제까지 바라만 볼 것이냐고 묻는다. 그나마 최근에는 건강한 조정을 받고 있다.
전문가 한 목소리 내는 미국이 대안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솔깃한 투자제안을 했다. 어린이 카페 사업을 하는 친구는 추가로 하나를 더 할 생각인데 시설투자비가 부족하다며 1억원을 꿔주면 매달 150만원씩 주겠다고 했다. 연 18%의 수익률이라는 것을 계산한 뒤 떨리는 가슴을 겨우 주저앉힌 채 "미안하다"며 사양했다.
친구와 돈 거래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친구가 아니더라도 선뜻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개인의 사업 수완을 믿기보다는 그래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수렴하는 투자대안이 더 나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