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경영신화 '한국재계 名家'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두세기에 걸쳐 영향력을 크게 미친 기업인이다. 그는 1938년 경일상회를 설립한 이후 30여년만에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대 역사를 이룬 후 몽구, 몽헌 두 아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을 직접 목도해야하는 영광과 아픔을 생전에 경험했다.
◇유교집안의 대가족
현대호는 대가족이다. 기업도 많다. 정회장은 처음에는 함께 일하다 때가 되면 독립을 주선해주는 것을 전형으로 유지했다. 정주영 창업자를 기준으로 크게 '형제 위성그룹'과 '아들그룹'으로 나뉜다.
정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정인영씨의 한라그룹, 둘째 동생 정순영씨의 성우그룹, 셋째 동생 정세영씨의 현대산업개발그룹, 막내 동생 정상영씨(64)의 KCC그룹이형제 위성그룹. 98년에 형제 가운데 가장 늦게 분리한 정세영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명실상부한 소그룹으로 만들고 있다.
빌딩 자동화사업 전문업체인 아이콘트롤스사를 인수하고 소규모 대지, 부동산 개발을 전담하는 계열사 아이앤콘스사를 새로 설립했다.
'아들 그룹'은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98년말 정 명예회장 7남 몽윤 회장. 몽윤회장은 현대해상화재보험을 가지고 나갔고 3남 몽근 회장이 99년초 현대백화점(옛 금강개발산업), 한국물류, 한무쇼핑, 주리원, 울산방송, 현대쇼핑 등을 거느리고 독자적인 그룹으로 분가했다.
최근 유통레갬必瀏裏막? 외형을 크게 늘리면서 이름도 금강개발그룹에서 현대백화점그룹으로 바꿨다.
재계 13위의 현대정유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5번째 동생인 고 정신영씨의 장남 몽혁씨(39)가 대주주다. 아랍에미리트연방의 IPIC사에서 5억1000만달러(지분 50%)의 외자를 유치한 현대정유는 99년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를 '빅딜'로 인수하면서 덩치를 헤비급으로 키웠다.
아들 그룹의 하이라이트는 정주영 회장의 2남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 소그룹이다. 4월 출범한 현대자동차 소그룹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재계 5위내에 자리잡을 예상이다. 현대호 가운데 가장 건실한 위성그룹이 되는 셈이다.
◇이어진 가족들의 불행
형제 가운데 회사 경영에 물러서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신영은 62년 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82년 4월에는 인천제철 사장으로 근무하던 장남 몽필을 역시 교통사고로 잃었다. 90년 4월에는 4남 몽우가 자살하는 등 아끼던 형제, 자식을 일찍 떠나보내는 불운을 겪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형제인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의 위상도 급격히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2000년 한해를 달군 정몽구, 정몽헌 형제의 경영권 다툼도 거대 그룹 현대의 분할과 하락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두 형제간의 다툼은 한국 최고의 재벌가라는 명성에 지울 수 없는 흠집을 일으켰다.
◇경영수업 중인 3세들
현대가에서 3세들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정주영씨 2세가 '몽'자 돌림이라면 3세는 '선'자 돌림인게 특징이다. 정 전 명예회장은 8남 1녀 자녀 중에서 손자와 손녀10 명씩 20명의 직계자손이 있다. 2남 정몽구 현대 기아차회장 외아들 정의선씨(31)와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장남 정지선씨 (29), 4남 정몽우씨(작고) 장남 정일선씨(31) 등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정의선씨는 올해 1월부터 현대자동차 상무(구매실장)로 승진했다. 현대 관계자는 "의선씨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가장 아끼는 3세"라면서 "왕자의 난 시기에도 의선씨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