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재계 '구조조정본부 시대' 막 내린다

재벌그룹 경영의 중핵을 담당해온 구조조정본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정부의 요구에 따라 각 그룹은종전의 비서실 또는 기획조정실 등 총수 보좌기구를 폐지하는 대신 구조조정을 담당할 한시기구로 구조조정본부를 신설했으나 상당수 그룹에서 이 기구는 구조조정 업무가 일단락된 뒤에도 존속해 계열사에 대한 통제와 감독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투명경영에 관한 재벌그룹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정부와 시민단체, 주주등의 개선압력이 끊이지 않으면서 총수의 '황제경영'을 뒷받침하는 조직으로 비판을받아온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 개편하고 명칭을 바꾸는 그룹들이 늘어나 이제는 구조조정본부를 둔 그룹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삼성그룹의 경우 구조본의 1실 5팀을 3팀으로 축소하고 인력도 147명에서 99명으로 감축하는 한편 명칭도 전략기획실로 변경했다고 8일 발표했다. 삼성은 "구조본이 갖고 있던 대규모 투자 승인권과 계열사 감사권 등은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돼 계열사들이 독립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경영할 수 있게 됐다"면서"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계열사를 지원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기아차차그룹은 계열사 전체를 관리하는 구조조정본부를 두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장기 사업계획과 미래 비전을 고민할 경영전략추진실을 신설했지만 두 완성차업체에만 해당될 뿐 나머지 계열사의 사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가와 환율 등 대내외 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이에 더욱효율적으로 대처하고 기업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경영전략추진실을 만들었다"면서"하지만 계열사 업무에 관여하지 않고 인사 기능도 없어 통상적인 개념의 구조본은아니다"고 말했다. 계열사가 140여개에 이르는 현대차그룹이 구조조정본부를 두지 않는 것을 재계에서는 과거 `왕자의 난'에서 기획조정실의 폐해를 경험한 정몽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LG는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조정에 이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한 출자구조 재편을 추진해 2002년 3월1일자로 지주회사인 ㈜LG를 출범시킴으로써 지주회사체제를 갖췄다. LG는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로 얽혀있던 소유.지배구조를 지주 회사 산하에여러개의 자회사를 두는 형태로 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출자는 지주회사가, 사업은 자회사가 담당하도록 전환함으로써 사업자회사는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고유사업에만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문에 LG는 비공식 총수 보좌기구의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경영간섭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며 실제로 지난달 열렸던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15개 대기업집단 구조정본부장들간의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 불려가지않았다. 지주회사인 ㈜LG는 사업포트폴리오 재구축, 사업자회사에 대한 소유 지분 매각과 취득을 통한 한계사업 처분, 외자유치, 신규유망사업 진출 등 상시적인 기업구조조정 기능과 지주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지분율 확보, 유지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화는 계열사 경영 및 투자를 총괄 조정하고 총수를 보좌하는 기구로 삼성과함께 구조조정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삼성이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키로 함으로써 재계에서 유일하게 구조조정본부라는 명칭의 총괄기구를 두는 그룹으로 남게 됐다. 한화의 구조조정본부는 과거 회장 비서실 조직에서 출발해 외환위기 때 계열사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출범했으며 현재 사장 1명, 부사장 2명, 전무 2명을 포함해 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화 구조조정본부는 계열사 중복투자 방지 및 대규모 투자 검토 등을 담당하는전략기획, 법무, 그룹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삼성의 발표에도 불구하고아직까지 조직이나 기능 변화 등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밖의 주요 기업들은 대부분 다양한 명칭의 총수 보좌 및 계열사간 조정 업무담당 기구를 두고 있으나 계열사별 자율경영은 보장된다고 밝히고 있다. 한진그룹은 구조조정실을 두고 있으나 현재 각 계열사별로 독립ㆍ책임 경영을하고 있어 직접적으로 계열사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그룹에 관련된 사안을 종합하거나 계열분리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고 그룹측은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략경영본부는 기업 인수.합병(M&A) 등 전략 수립을 하거나 신규 사업을 검토하는 전략기획부문과 그룹의 전반적인 인사, 교육, 총무 등 역할을 하는 경영관리부문, 회계 금융 업무를 총괄하는 재무관리부문, 품질 경영부문,홍보부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두산그룹은 ㈜두산에 전략본부가 설치돼 있으나 감사 및 인사 조정 보다는 주로인재 교육, 비전 등 그룹의 전체적인 장기 전략을 짜는 일을 맡고 있다. 현재 두산은 지배구조 개선 작업으로 각 계열사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단기,중기 전략을 짜는 식으로 역할이 분담돼있으며 전략본부가 있지만 사실상 기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두산측은 설명한다. 롯데는 모 회사격인 호텔롯데에 15개실의 경영관리본부를 두고 있었으나 지난 2004년 12월에 8개실로 축소하고 명칭도 정책본부로 변경했다. 사장단 회의가 없을 만큼 계열사별 독립 경영 체제가 확고한 가운데 정책본부는미래전략 수립, 신사업 발굴, 중복투자 예방, 핵심가치 수립 등 그룹 차원의 주요정책들을 검토, 추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지난 2000년 그룹의 종합조정실을 폐지함으로써 계열사간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 자체를 없앴다. 따라서 현재 동부그룹에는 각 계열사의 업무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부가 있을 뿐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조직은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구조본의 폐지 또는 축소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많은 그룹 관계자들은 여러 계열사의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선택과 집중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조직은 꼭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구조본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 아래서도 이와 같은 총괄 조정기구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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