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참여'에서 '합의'의 시대로

참여정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국민적 참여 열기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도 6개월 후면 막을 내리게 된다. 어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된 가운데 대통합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도 합당해 범여권은 통합정당과 민주당의 양대리그로 후보경선을 치를 것으로 보여 이제 여야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새 정부와 새로운 시대로 국민적 관심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과 지난 2002년 6월, 봇물 터지듯 거리로 쏟아져 나온 월드컵의 함성은 참여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새 시대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자발적이고 응축된 힘에 추동된 참여정부는 국정운영에 참여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 국민참여센터가 개설되고 장관 후보를 온라인으로 추천받을 정도로 국민의 목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권력 핵심부와 각종 위원회에도 시민단체 출신과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했다. 정부와 기업ㆍ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로의 패러다임 전환도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참여민주주의는 참여정부의 기본이념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참여의 시대에 사회ㆍ정치적 갈등은 극에 달했다.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 이라크 파병 등을 둘러싼 이념ㆍ정치적 갈등은 물론이고 새만금 간척사업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 방폐장 입지선정 등 환경갈등은 역대 정부 가운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과 투쟁은 참여정부의 국정원리를 무색케 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갈등과 반목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상태에서 법적ㆍ제도적 장치도 미흡했다. 이상과 의욕은 넘쳤지만 현실은 참여의 부작용으로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결과만 양산했다. 급기야 정부는 2005년 갈등예방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 수용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국회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 마련이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참여정부가 성공작으로 자평하는 사례는 경주 방폐장 입지선정이다. 부안사태 의 홍역을 치른 정부는 입지선정과정의 절차적 민주성을 강화하고 고준위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분리처리하는 방식으로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한편 막대한 규모의 경제적 지원방안 을 제시함으로써 주민설득에 성공했다. 설득 정도가 아니라 경주를 포함한 4개 시에서 유치 경쟁이 과열될 정도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참여민주주의 구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것은 외국의 경우 위험ㆍ혐오시설에 대한 주민 투표는 부결되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우리나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개 인의 다양한 선호와 가치를 총합할 수 있는 주민투표를 지자체간 경쟁방식으로 각색함으로 써 합리적인 대화와 이성적 토론은 사라지고 감정 대립과 왜곡된 선호가 반영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민소환제도도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참여를 소통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자기이익을 극대화하는 쟁취의 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을 소중히 여기며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합의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탄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신뢰가 추락하고 도덕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사회적 인프라와 문화적 토양도 아직 척박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선 후보들은 진흙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합류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토론과 공공적 성찰이 영그는 숙의(deliberative)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참여의 시대를 넘어 합의의 시대로 가야 한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갈등과 반목에 지친 국민들에게 화합과 합의의 시대를 여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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