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4일] <1294> 공공채무 보고서

‘국가채무 처리와 재정운용에 대한 계획안을 제출하시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에 임명된 알렉산더 해밀턴에게 하원이 내려준 첫 과제다. 3개월 이내 제출을 독촉 받은 해밀턴은 1790년 1월14일 ‘공공채무에 관한 첫번째 보고서’를 하원에 올렸다. 골자는 두 가지. 연방 및 주정부의 부채규모와 해결책을 담았다. 해밀턴은 연방이 3분의2, 독립 13개 주가 3분의1을 차지하던 부채 7,900만달러를 갚기 위해 국채를 신규 발행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연방정부의 비대화를 우려하던 의회의 반발을 낳았다. 재정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버지니아주 같은 남부의 반대가 특히 거셌다. 연방정부가 책임진다면 갹출이 불가피하고 결국은 돈이 많은 남부에 부담이 집중된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채무는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도 반대론에 힘을 보탰다. 난관에 봉착한 해밀턴은 ‘문제는 채무가 많은 게 아니라 높은 차입금리’라며 정부보증채가 낮은 가격으로 팔려야 국제사회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팽팽한 찬반 양론은 해밀턴과 반대파의 수장격이던 제퍼슨 국무장관 간 담판을 통해 하나로 합쳐졌다. 연방정부 수도를 임시수도로 사용하던 필리델피아와 뉴욕 대신 남부에 가까운 지역으로 이전한다는 조건으로 해밀턴 보고서가 수용된 것이다. 국채발행을 통해 미국은 빠르게 재정적 안정을 굳혔다. 국채의 대량 발행과 유통을 통해 월스트리트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성공에 자신을 얻은 해밀턴은 모두 다섯 차례의 경제 관련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 동의를 얻어냈다. 미국경제의 뼈대가 여기서 갖춰졌다. ‘역대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기억되는 해밀턴의 첫 작품인 공공채무 보고서는 14만여개 단어로 작성돼 초기 미국영어를 연구하는 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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