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채무경감 여론을 놓고 양분됐던 국제채권단 내 여론이 차츰 경감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른바 '트로이카'로 불렸던 3대 채권기관 중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까지 그리스에 동정표를 보내고 있다.
이제 남은 변수는 트로이카의 또 다른 한 축인 유럽연합(EU)의 결단이다. 그러나 유럽 채권국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그리스에 대한 과도한 지원에 반감을 보이는 의견이 절반에 육박해 아직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이 같은 역학구도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그리스 동정론의 바람을 잡으면서 한층 부각되고 있다. 드라기 총재는 1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채무경감(debt relief)이 필요하며 해당 방안이 앞으로 구제금융 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제금융 협상 타결 이전인 이달 초까지만 해도 그가 그리스 문제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전향적인 입장 변화다. 더구나 이는 그리스가 지금의 채무구조로는 도저히 빚을 갚기 어려워 채무탕감(hair-cut)이 필요하다고 밝혀온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의 견해와도 궤를 같이하는 발언이다.
그리스가 트로이카를 비롯한 국제채권단에 진 부채 규모는 모두 3,230억유로에 달하며 이 중 IMF와 ECB는 각각 320억유로와 200억유로의 채권을 쥐고 있다. 그리스는 채권단에 최대 30%의 채무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기·라가르드 총재의 지지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여전히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채권국 일부의 채무탕감 반대 여론을 넘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6일 자국의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860억유로에 달하는 3차 구제금융을 받는 것보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를 선택하는 게 그리스에 더 나은 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 채권단 내 강경파의 의미는 작지 않다. 당장 3차 구제금융 재원 중 상당액은 유로존의 일종의 비상자금인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통해 마련되는데 ESM 출자국의 절반에 육박(지분율 기준)하는 회원국들이 그리스에 대한 과도한 채무탕감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이 지난주 내놓은 유로존 회원국별 그렉시트에 대한 입장분석 자료를 기초로 ESM 출연국별 성향을 보면 "그렉시트를 준비할 수 있다"며 사실상 그리스 퇴출 가능 입장을 나타낸 국가는 독일·핀란드·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에스토니아를 비롯해 모두 7개국으로 이들의 총 ESM 지분율은 41.71%에 달한다. 물론 해당 자료는 지난주 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채권단과 그리스 간의 협상이 전격 타결되기 직전에 나온 것이기는 하나 해당국들의 실제 여론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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