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독일 가족기업이 장수하는 이유-미하엘 그룬트 한국머크 대표


장수하는 가족기업의 비결 중 하나는 회사 이익을 가문의 이익보다 앞세운다는 점이다. 또 경영자로서 자격을 갖춘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런데 한 회사를 소유한 가문의 구성원이 100·2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경우도 있다. 경영권 다툼이 일어날 여지도 있다. 가문의 젊은 세대들이 경솔하게도 기업 활동의 목적을 경제적 이익에서만 찾는 사례도 목격된다.

가족 경영기업에서 어떻게 효율적인 경영 방식과 체제를 수립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대기업 대부분이 가족 경영기업인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가족 경영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너 가문의 젊은 세대가 스스로를 가족의 일부로 인식하고 '패밀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혹은 유능한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오너 가문은 아예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머크의 경우 후자에 가깝다. 머크는 이미 1920년대부터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 경영을 맡겼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가족기업에서는 오너 가문의 구성원이 주요 보직을 맡는 경우가 많지만 머크 가족은 이사회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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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크뿐만 아니라 독일의 많은 가족기업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있다. BMW의 경우에도 오너 가문은 이사회에만 참여할 뿐 회사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잡다단한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족 구성원의 재능이 항상 충분하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재풀이 훨씬 넓은 회사 밖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물론 핵심 보직에 올라선 전문경영인도 오너 가문 못잖은 권한과 책임을 보장 받아야 이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오너 가문이 자신들의 기업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너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진이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먼저다. 대부분 독일 가족기업에서는 오너 가문의 구성원이 입사를 희망할 경우 외부에서 먼저 경력을 쌓고 자신의 자질을 인정받아야 한다. 외부에서 긍정적인 트랙 레코드를 쌓아야 유능한 리더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을 거쳐 무사히 가문 소유의 기업에 입사했다 해도 사내에서 치열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 사내 동료 등으로부터 인정받고 외부 전문경영인만큼이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내가 오너인데 회사에서 어떤 자리든 차지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없다는 의미다. 가족기업이든 아니든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이다. 모든 기업은 미래의 핵심 인재가 될 이를 발견하고 육성하기 위해 통합된 인재 개발·보상과 성과 관리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이는 오너 가문의 구성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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